새해의 달력을 새로 걸면서 한 해를 가늠해 보는 시선은 우리 모두 조금씩 다를 것이다. 정치현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새해는 좁게 보면 노무현 정부가 출범 2년을 맞는 해이다.
좀더 넓게 보자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17년이라는 적지 않은 연륜을 쌓아올리는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해는 이 17년의 한국민주주의를 3김 시대와 포스트 3김 시대로 매듭짓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의 대통령 선거가 포스트 3김 시대를 여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면, 올봄에 있게 될 국회의원 선거는 3김 시대 이후 정치를 이끌어갈 정치주체의 나머지 절반을 선출하는 무대이다. 다시 말해 이번 봄의 총선은 이른바 한 시대를 구분짓는 계기로서의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터인데,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 총선을 통해서 과연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방식을 통해서 구축될 수 있을지의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총선 이후에 갖춰지는 체제가 과연 생산적인 정치를 이끌어갈 구조를 제대로 갖출 것인지의 문제이다.
먼저 새 질서 형성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소간 기대 섞인 전망을 가져볼 수 있다. 올봄의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주요 정당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는 긍정적인 변화의 기미를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 각 정당들이 국회의원 후보들을 충원하고 결정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절차들은 3김 시대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유권자와 당원들에게 참여의 길이 열려 있고 또한 그 과정이 과거보다 훨씬 투명해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최근 노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불법정치자금에 관한 수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치자금의 흐름에 대한 감독과 처벌의 실효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은 인정할 만한 변화이다.
우리가 정작 우려하는 것은 변화의 방식보다는 총선 이후에 나타날 구조가 과연 생산적인 정치를 이끌어갈 채비를 갖추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만일 현재와 같은 지지분포가 유지된다면, 총선 이후에도 청와대와 국회는 각각 다른 정파가 지배하는 분점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럴 경우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청와대와 국회가 사사건건 충돌했던 지난 한 해 동안의 소모적 양상이 향후 4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무한교착과 충돌이 포스트 3김 정치의 숙명인가? 이러한 무한교착은 사실 대통령과 국회의 쌍방과실의 성격이 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착을 풀고 생산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리더십은 대통령이 발휘해야 한다.
이때 생산적 리더십의 요체는 노 대통령이 임기 첫해에 보여주었던 대결형의 국회관, 개혁과 반개혁의 이분법적 사고를 유턴하는 데에 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정책을 펴는 데에 성공했던 것은 임기 2년차의 U턴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클린턴은 임기 첫해에 워싱턴을 개혁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백악관에 입성했지만,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임기 첫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임기 2년차부터 보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클린턴 못지않게 개혁적인 대통령을 자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 유사한 도전 앞에 서게 되었다. 임기 2년차를 맞는 노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혁에 대한 접근방식의 U턴이다. 자신의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을 단순하게 개혁과 반개혁으로 구분하고 충성스런 지지세력 이외의 모든 세력을 적대시하는 순혈주의 시각으로부터의 방향전환이 절실한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에 노무현 정부의 남은 4년뿐만 아니라, 포스트 3김 시대의 민주주의의 운명이 걸려 있다.
(장훈·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