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문가가 뽑은 올해의 아티스트’ 설문 결과에서 유독 낯선 이름이 포크 듀오 ‘재주소년’이었다.
어떤 응답자는 이제 막 나온 이들의 첫 음반을 ‘올해의 앨범’으로 꼽았고, 어떤 이는 ‘올해의 신인’ 또는 ‘과소평가된 아티스트’라 평했다.
그러면서 “1980년대 포크 듀오 ‘어떤날’의 환생”이라고 했다. 혼자 수십 개 악기를 다루는 ‘천재소년’ 정재일은 알겠는데, 재주소년이 누구이기에 ‘어떤날’과 동급이란 말인가.
일단 이들을 찾아내는 게 어려웠다. ‘문라이즈’라는 인디 레이블 소속인 데다, 레이블 대표인 김민규(델리스파이스 보컬)는 호주 여행 중이었다.
수소문 끝에 손에 넣은 재주소년의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독한 감기약에 취하듯 몽롱하게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쉼없이 듣고 또 듣다가 플레이어 건전지가 다 닳아버렸다. 오, 재주소년을 소개해 주고 생을 마친 건전지 쌍둥이에게 조의(弔意).
유상봉(20)·박경환(19) 두 ‘재주소년’은 초등학교 친구로 만났다. 중3 때 다시 같은 반이 되면서 두 사람은 처음 밴드를 만들었다.
그때 둘이 좋아했던 음악은 떼지어 나온 여자 댄스그룹이 아니라, 조윤석의 어쿠스틱 프로젝트 음반 ‘루시드 폴’과 미국의 실험적 로커 벡(Beck), 그리고 비틀스였다.
“그리고 제가 먼저 제주대에 진학했어요. 상봉이는 재수를 했고요. 상봉이는 내년에 한라대 생활음악과에 입학해요.” 그래서 ‘재주소년’은 원래 ‘제주소년’이었다가 ‘재주+제주’를 합쳐 ‘才洲少年’으로 바꿨다.
경환은 비교적 활달한데 상봉은 말이 거의 없었다. 인터뷰는 경환하고만 하는 것 같았다.
둘은 작년 여름 3박4일간 제주도 일주 자전거 여행을 했다. 여행 떠나기 전 자작곡 8곡을 담은 CD를 기획사 세 곳에 보냈다. “나른한 오후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서” 팀 이름을 ‘애프터눈(Afternoon)’이라고 붙였었다.
그리고 경환은 작년 11월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 동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이제 음악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침 기획사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둘은 올해 서울재즈아카데미에 다녔다.
상봉은 6개월짜리 뮤직비즈니스 과정을 졸업했지만, 경환은 1년짜리 작·편곡 과정을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들의 음반은 ‘스무 살의 감성은 이런 것이다’ 하는 메시지 같다. 확성기로 외치는 고함이 아니라, 슬그머니 내민 따뜻한 손이다. 사람들이 말한 ‘어떤날의 환생’은 과찬이 아니었다. 이들은 벌써 자작곡이 80곡쯤 된다고 했다.
음악은 단순한 어쿠스틱 기타를 기본으로 세련된 멜로디로 전개되는 포크다. 어깨의 힘을 완전히 뺀 이들의 노래는 오랜 신열(身熱)이 내린 뒤 떠먹는 미음처럼, 혹은 40도 온수에서 20분쯤 반신욕을 했을 때 전신 모공에서 솟는 땀처럼 평온하다.
‘간만의 외출’에서는 여행스케치의 씩씩한 표정이, ‘명륜동’이나 ‘사라진 계절’에서는 어떤날의 쓸쓸한 서정이 흠뻑 배어난다. 타이틀곡 ‘눈 오던 날’에서는 시인과 촌장이, 경환의 열두 살짜리 동생도 함께 노래한 ‘귤’에서는 산울림의 정취도 포착된다. ‘섬’은 김민규가 불렀다.
“‘어떤날’에 비교된다는 것, 분에 넘치고 감사하죠. 저희가 가장 닮고 싶은 그룹이에요.” 경환이 겸손하게 답하자, 상봉은 “네, 저도”라고 말했다.
전곡 ‘홈 레코딩’이다. 일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둘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소음을 막으려고 컴퓨터에 이불을 뒤집어 씌워놓고 작업했다. 경환은 “잘 들어보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며 웃었다.
둘의 외모는 이른바 ‘시장성’과는 꽤 멀다. 상봉은 무성한 여드름 탓에 고민도 꽤 했을 것 같다. 그런들 어떠랴. 그 ‘시장성’이란 괴물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유린하고는 이제 등을 돌려 퇴장하는 참이다. 소년들아, 재주를 맘껏 보여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