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회사 지하 저장고의 기름 누출 여부를 단속하는 미 텍사스 지역 환경오염 감독관이자 지질학자 브라이스. 복지부동·수뢰·향응·은폐 같은 관료사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려 애쓰던 그는, 박봉의 고단함 때문에 사설 환경평가업체의 특채 제안에 응한다. 불평등한 갑을(甲乙)관계를 즐기며 돈맛에 만취된 채 보낸 그곳에서의 11년, 비로소 자신의 타락과 사회의 파멸이 동행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양심을 꾸짖어 깨운 옛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말단 지방공무원직을 택해 새 출발을 한다….
책(원제 What Should I Do with My Life?)은 자신의 천직(天職)과 소임을 찾아 떠나는 ‘50인50색’의 이야기다. 탈선·도피·전향이란 용어로는 형언하지 못할, 부귀영화의 헛된 꿈 대신 내면의 울림에 충직하려는 이들의 사연을 엮은 명상집이다.
릭이 피츠버그의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에서 1주일에 4800㎞를 달리는 장거리 트럭운전사로 전업한 것은 순전히 아들 때문이었다. 일이 삶 전체를 조종하는 ‘선망의 직업’ 대신, 운전대를 잡았을 때 풍광을 즐기고 돌아와선 아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야구도 가르쳐 줄 수 있는 ‘떠돌이 잡역’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회복한다.
9·11 테러로 직장 동료 700명을 잃은 뒤 한 증권회사 재건 업무를 맡고 있는 헤이디. 증권·미술·IT 등 최신 트렌드 직종만 골라 살아왔던 유능한 그녀는, 테러 발생 5개월 전 월 스트리트를 떠나게 했던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가 ‘신의 은총’이었음을 절감했다고 했다. 헤이디는 “소소한 일에 안달할 이유도, 나와의 약속이나 재산·과거에 얽매여 살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묻는다. “목적지 없는 인생 여정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의지를 갖고 특정 목적지를 향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캘리포니아 영화 특수효과 촬영회사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어릴 적 꿈인 전기 자동차를 만들 벤처회사를 차리려고 포틀랜드로 이주한 존. 명쾌한 결단 뒤에 꿈은 신기루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저자는 “열정과 충동은 어떻게 다른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체험으로 개척하는 것인가, 그저 운명이라 여겨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또 묻는다.
분노에 찬 정의감에 매몰돼 살던 검사에서 목회자로 변신한 버틀러의 예는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는 때로 자신의 가장 큰 재능과 제약된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창업·일확천금에의 강박증에 시달리던 조지의 경우는 “왜곡된 안경이 아닌 내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되뇌게 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적성을 두고 고민하다 의사의 길을 포기한, 토머스 제퍼슨 의대 산부인과 의사 제시카의 사례에서 “자아 찾기가 삶의 목적이라면, 앞서 걸었던 전반부 인생은 헛된 것이 아니며 길을 바꾼 순간 이미 중대한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 줄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저자는 그릇된 믿음과 두려움, 덧없는 욕망을 헤치고 진실된 자아에 경청했던 이들의 조각 체험들을 꿰어간다. 열정은 경험이라는 뿌리에서 꽃핀다는 것, 세상을 바꾸려는 의욕만큼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방황과 좌절의 고백들을 통해 덧칠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