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싸움터에서 오른팔을 잃었다. 스승 요세프 라보는 제자를 다그쳐 왼손 연습을 시키는 한편, 당대의 작곡가들에게 외팔의 피아니스트를 위한 협주곡을 부탁했다.

1932년 빈 교향악단과 비트겐슈타인이 초연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은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스승은 내 삶과 영혼까지 구제했다”고 눈물 흘리는 그에게 라보는 “제자를 절망에서 구하는 것이 스승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보리밥에 김치뿐인 가난한 도시락마저 못 싸오는 학생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던 지난날, 배곯는 제자를 위해 도시락을 두 개씩 싸왔던 선생님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 볼세라 몰래 전해주던 선생님의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뿐 아니라 쓰라린 가슴까지 달랬던 아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아무데도 믿을 곳이 없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반년 넘도록 방치했던 중학생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것도 실은 스승이었다.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보일러를 고쳐주러 선생님이 소년의 집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열다섯 살 소년은 지금 이 순간도 백골이 된 어머니의 시신을 옆 방에 둔 채, 전기도 가스도 끊긴 집에서 세상과 벽을 쌓은 채 무너져내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스승의 진정한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어린 제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입은 가슴을 쓸어주는 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어제 14명의 교사가 교육부와 조선일보사가 함께 선정한 ‘올해의 스승상’ 수상자로 뽑혔다. 강원도 농촌 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공개 수업과 학부모 만남을 통해 학교에 대한 지역사회의 믿음을 회복했다. 인천의 섬마을 고등학교 선생님은 방학 때도 자기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제자들 공부를 돌봤다. 어려움 모르고 자라는 도시의 중산층 학생들에게 ‘친구 칭찬하기’를 가르친 선생님도 있다.

학교가 입시 준비를 위한 곳으로 전락하고 사제 간의 정도 메마른 것이 오늘이라지만, 황금찬 시인이 말했듯 “스승은 꽃과 열매를 열게 할 씨앗을 마음 밭에 심는 슬기와 노력을 일러주는” 사람이다. 지난 한 해 우리네 학교는 교육정보통합전산망(NEIS) 도입을 둘러싼 다툼과 전교조·교총의 갈등, 부안에서의 등교 거부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새해에는 학교가 대결과 세력 경쟁의 싸움터가 아닌,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자리잡기를 새삼 기원해본다.

(박선이 논설위원 sunnyp@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