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한겨울인 7월. 기나긴 극지의 밤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 34도, 보이는 것이라곤 사방으로 펼쳐진 얼음뿐. 아득한 먼 곳에서 시작된 수백만 톤의 얼음 압력이 밀려올 때면 배의 구석구석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는 듯했다.”(‘인듀어런스’, 뜨인돌 출판사)
1915년, 어니스트 섀클턴이 이끄는 남극횡단 탐험대 28명은 빙하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거의 끝에 온 것 같군. 배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거야.” 섀클턴 대장이 선장에게 건넨 이 한마디는 극지탐험 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로 기록될 인듀어런스호(號)의 최후를 예감한 것이었습니다.
배를 버리고, 무시무시한 강풍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의 부빙(浮氷) 위로 몸을 옮긴 대원들은 아득한 절망감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의 시작이었을 뿐이지요.
해빙기를 기다리며 이어진 행군과 캠핑. 그러나 대원들을 태운 빙하는 바람과 조류를 타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마침내 세 대의 보트에 나눠 탄 대원들은 섬으로 향하지만 집채만한 얼음덩이들이 덤벼듭니다.
“번들거리는 범고래의 기분 나쁜 그림자가 밤새 배 주변을 맴돌았다. 대원들은 캄캄한 물 속에서 고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으로 기억했다. 대원들은 이 거대한 짐승이 얼음도 박살내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깊고 신비로우며 사악하기까지 한, 으스스한 파충류의 눈을 가진 존재가 바로 고래였다.”
섀클턴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배가 조류에 떠밀려 대서양의 망망대해에 버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모진 사투 끝에 섬에 상륙하지만, 그곳은 피난처였을 뿐 오래 머물 만한 곳은 아니었지요. 섀클턴은 결단을 내립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이 다시 배를 타고 포경기지가 있는 사우스 조지아섬으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섬까지 무려 1000㎞,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에 몸을 맡긴 채 파도와 싸운다는 것이었지요.
“파도가 몰아치면 배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가파르게 곤두박질쳤다. 마치 바다가 엄청난 힘에 의해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 같았다. 배가 파도의 강타를 맞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섀클턴은 결국 해냈고, 섬에서 기다리던 동료들을 모두 구출해냅니다. 1914년 인듀어런스호가 런던을 출발한 지 꼭 2년2개월 만의 일입니다. 단 한 명도 잃지 않고 탐험대 전원이 생환한 이 감동적인 스토리는 극지탐험 영웅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건이었습니다. 남극 세종기지 조난사고를 보면서 다시 꺼내 읽은 ‘인듀어런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