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6시쯤, 백화점이 입주한 서울 영등포 역사(驛舍) 앞은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으로 휘황했지만 바로 옆 속칭 ‘쪽방 골목’에는 을씨년스러운 어둠이 내려 있었다. 그러나 그 골목에도 절망을 사랑으로 밝히는 작은 빛이 있었고, 그 시간쯤이면 사랑의 빛을 찾아 골목에 사람의 행렬이 이어졌다. 목적지는 ‘요셉의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은 의료보험증, 의료보호증도 없고 진료비도 없어 다른 병원에는 갈 수도 없는 극빈환자와 노숙자, 행려병자 등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가톨릭의 대표적 의료복지시설이다. 요일별로 자원봉사 나오는 24개 과(科) 120여 의료진과 450여 자원봉사자, 1200여 후원자들의 한가운데에 개원 때부터 16년을 한결같이 병원을 지켜온 선우경식(58) 원장이 있다. 가톨릭의대를 나와 미국유학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 내과 과장을 지내던 그는 지난 83년 신림동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87년 이 병원 설립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여러 뜻있는 이들의 사랑을 모아서 노숙자 등에게 나눠주는 우체국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상근 직원 10명과 함께 교통비 정도만 받는 요셉병원 일이 바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문을 여는 이 병원이 가장 바빠지는 시간은 일반 병원이 진료를 마칠 저녁 7시부터 9시 사이. 자원봉사로 진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각자의 일터에서 퇴근해 모이는 것도 이 시간이고, 하루 5000원 쪽방 값이라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갔던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도 이 때다.
“하루 100명쯤 환자가 오는데, 그 중 한두 명은 암, 장출혈 등 우리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위급한 중환자입니다. 가톨릭의대 부속병원 등 몇몇 병원에는 자선병상이 있는데 그 담당자들 퇴근하기 전에 이송시키려면 전쟁이 따로 없죠. 그래도 1년에 한 300명쯤 그런 분들의 생명을 구하는 게 보람입니다.”
그뿐 아니다. 치료를 마치고 오갈 데 없는 노숙자를 위한 쉼터인 ‘성모자헌의 집’과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재활을 위한 ‘목동의 집’으로 안내하는 등 활동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3년 전부터 요셉의원을 찾는다는 이모(44)씨는 “10여년 전 간염에 걸렸는데 일용직 나가면서 계속 술을 마셔 간이 상했다”며 “2주에 한 번씩 약 타고 피검사하는데, 나처럼 의료보험도 없는 사람에겐 요셉의원밖에 없다”고 했다.
선우 원장은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고철이나 폐지를 팔아 모은 귀한 돈을 쪼개 한 달에 1만원씩 후원금을 보내오는 환자들이 20여분 있다”며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눠 주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는 것은 술도 끊고 올바로 살게 된다는 징표”라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그는 “일반인들은 이것저것 계산하고 나누기 일쑤인데 이분들은 작은 것이라도 잘 나눈다”며 “그런 점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잘 실천하는 품성 고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선우 원장은 지난 6월 호암상을 받았다. 그는 오히려 쑥스러워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얼마나 도망가려고 했는지 몰라요. 처음엔 ‘3년만’ 했다가 후임자가 없어서 다시 ‘2년만’ 했는데, 5년이 지나도 후임자는 안 나타나고 그 사이 환자는 2만명이나 돼 버렸죠. 그래서 ‘이 사람들 버리고 내가 무슨 팔자 고치겠다고…’ 싶어서 생각을 고쳐먹은 것뿐입니다.”
요셉의원이 펼치는 사랑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 요셉의원의 소개를 받은 일산 백병원이 악성 뇌종양 환자를 무료로 수술해줬고, 최근엔 이화여대 목동병원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된 환자들을 맡아주기로 했다. 선우 원장은 “다른 의료기관들도 십시일반으로 조금씩이라도 극빈환자들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탄절을 전후한 20일부터 27일까지 이 병원 3층 진료실과 복도에선 뜻 깊은 전시회가 마련된다. 이만익 김경인 김춘옥 김혜림 송민호 신승우 유인수 이승연 이환범씨 등 화가들이 10호 내외의 소품 3~4점씩을 내놓아 전시회를 갖는다. 요셉의원을 돕기 위해 ‘착한 이웃’이란 월간지를 발행하는 전직 외교관 이동진씨와 화가들이 의기투합해 기획한 전시다. 김경인씨는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화가들인 만큼 그림을 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우 원장은 “화가분들의 뜻이 고맙다”며 “아예 그림 사줄 분들도 모시고 와달라”며 웃었다. (02)2636-2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