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포르노비디오테이프와 도색(桃色) 잡지 유통의 중심지로 ‘명성’을 날렸던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와 청계천8가. 이곳 음란물 시장이 최근 4~5년 만에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 인터넷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음란물의 유통도 온라인(On-line)시장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에서 포르노테이프를 팔고 있는 김모(35)씨는 “요즘 장사가 잘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기 주변을 보시오. 사람이 있어야 장사를 하지”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잡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도 보였다.
“기껏해야 하루에 2~3개 팝니다. 요즘 사방에 늘린 게 포르노인데 일부러 이곳까지 나와 사겠습니까. 한 달에 1만원만 내면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마음껏 볼 수 있는데 누가 3개에 1만원이나 하는 비디오테이프를 사겠습니까. 인터넷을 할 줄 모르거나 자식 눈치 보느라 케이블 성인채널을 보기가 민망한 50~60대 나이 드신 분들이나 눈요깃거리로 사면 모를까.”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7년째라는 박모(31)씨는 “어쩔 수 없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 장사도 벌써 한물이 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밀린 밥값을 받으러 온 식당 아주머니에게 “오늘 하나도 못 팔았어요. 내일 드릴게요”라고 했다.
청계천8가 주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낯 뜨거운’ 사진으로 포장된 음란 비디오테이프를 좌판에 진열해 놓은 조모(47)씨는 혼잡한 시장의 한 편에서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과거에는 10대를 비롯해 젊은 층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은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유명 연예인의 누드 사진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누가 이런 비디오를 보려고 하겠습니까.”
80년대 전성기 때에는 이 장사로 한 달에 수백만원씩 벌었다는 전모(여·57)씨는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방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객실용 테이프를 사갔지만,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성인용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한 김모(52)씨는 “컴퓨터가 아이들 방에 있기 때문에 인터넷 이용이 쉽지 않다”며 “번거롭더라도 이렇게 테이프를 구입하면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이를 단속하는 경우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100여명이 넘었는데, 요즘은 20명도 채 안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의 단속도 좀 느슨해졌고요. 1주일에 보통 한 번 정도 단속이 나오는데 그냥 분위기만 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경찰은 “음란물 판매로 적발될 경우 보통 100여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13년간 음란물을 팔아왔다는 김씨는 “젊었을 땐 수입이 짭짤해서 별 생각없이 장사를 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점점 크니까 이 일을 계속 하기가 힘들다”며 “내년 봄쯤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나 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을 파는 한 상인은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음란물을 파는 사람들 때문에 일반 상인들까지도 좋지 않은 인식을 받아 억울한 면도 있었다”며 “음란물 판매업자들이 많이 줄어든 만큼 이곳도 원래의 전자제품 전문 상가로서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