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사람들이 가사를 알아듣고 편안함을 느끼는 노래 말이죠.”

8일 오후6시30분 인천 자유공원 아래 중구문화원(옛 인천문화원)에서 두번째 음반 ‘사랑앓이’ 발매 기념 초청 음악회를 여는 전경옥(全瓊玉·40)씨.

TV에서는 거의 대할 수 없는 얼굴이지만 ‘이 바닥’에서는 그 실력과 의지가 잘 알려져 있는 가수다. 이번 음악회도 그녀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자리로, 좁고 낡은 건물에서의 화려하지 않은 모임이지만 그녀는 고맙고 기쁠 뿐이라고 했다.

인성여고를 나온 인천 출신, 서울대 성악과 졸업, 1997년2월 서울 대학로에서 첫 단독 콘서트, 1998년 첫 음반 ‘혼자사랑 1,2’ 발표…

언뜻 본 이력대로 소프라노를 전공한 성악과 출신이지만 그녀는 안도현, 문익환, 도종환 등의 시가 가사인 노래를 잔잔한 클래식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대중가수다.

“성악 하는 여성들 누구나 그렇듯 프리마돈나가 꿈이었어요. 딴따라가 되려한다고 아버지가 밥상을 치며 반대하셨지만 그래서 음악의 길을 버리지 않았죠. 하지만 막상 대학에 가보니 생각이 바뀌더라구요.”

그녀의 마음을 바꿔놓은 것은 역시 무거웠던 80년대였다.

대개의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 당장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이웃의 현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음악이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하면서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론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현실 사회에 기여하자는 것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나도 행복할 테니까.”

80년대 말 ‘민족음악연구회’라는 모임에 참가하면서 대중에게로 다가가려는 그녀의 노력은 점차 탄력이 붙기 시작해 양심수를 위한 모임, 독립예술제 등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나 KBS 주최 음악회 등에도 초청돼 노래를 불렀고, 집에 연습실을 두고 해마다 단독 음악회도 열고 있다.

“너무 정치색이 강한 모임만 아니면 가서 노래해요. 성악같은 제도권의 클래식 음악이나 민중음악권 어디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으려면 정말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구요.”

그녀는 지난해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열린 산사음악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보름달이 훤한 절에서 개신교 목사가 사회를 보고, 원불교도들과 시민들이 어우려져 종교를 초월한 합일(合一)의 장을 이루고, 끝난 뒤 절에서 막걸리로 다 함께 뒤풀이를 하던…

“경제적인 것을 포함해 일상에서 힘든 게 많았어요. 하지만 노래하는 순간 만큼은 내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고 스스로를 맑게 하는 내 모습을 느껴요. 이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져 제 노래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온통 10대 중심의 댄스 음악으로 가득찬 방송이 좀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던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이제 제발 그만 하랄 때까지 노래를 하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