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어머니가 내게 와서

신발 좀 빌어달라 그러며는요

신발을 벗었더랬죠

죽은 어머니가 내게 와서

부축해다오 발이 없어서 그러며는요

두 발을 벗었더랬죠

죽은 어머니가 내게 와서

빌어달라 빌어달라 그러며는요

가슴까지 벗었더랬죠

하늘엔 산이 뜨고 길이 뜨고요

아무도 없는 곳에

둥그런 달이 두 개 뜨고 있었죠

--[兜率歌] 전문

‘도솔가’는 신라 경덕왕 때 고승 월명사(月明師)가 지었다는 4구체 향가이다. 당시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나는 괴변이 일어나자 그가 이 노래를 불러 사태를 진정시켰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후대의 학자들은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파악하기보다는, 해를 왕의 상징으로 보고, 천상계의 이변은 지상에서 왕권에 대한 도전 세력이 등장했다는 사실의 우회적 표현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신라 향가인 ‘도솔가’가 가부장적 국가주의의 문맥 속에 놓여 있는 작품이라면 김혜순의 ‘도솔가’는 그와 정반대 되는 모계적 연속성에 대한 여성 특유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시의 마지막 행 “둥그런 달이 두 개 뜨고 있”다는 구절을 제외하면 김혜순의 시에서 월명사의 원작에 대한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하지만 하늘에 뜬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 이 두 천체는 상반된 속성만큼이나 작품 속에서 전혀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

남성중심적 권력을 나타내는 해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일할 수밖에 없으며 타자와의 공존이 허락되지 않는다. 반면 김혜순의 시에선 화자와 어머니의 하나되기, 즉 육체적 동화를 통해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뜨는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죽은 어머니가 딸을 찾아와 살아 있는 몸을 요구하고 딸은 거기에 순순히 응한다.

다분히 그로테스크한 이러한 설정은 그러나 어두운 분위기의 괴담으로 치닫지 않고 화자의 유머러스하며 천연덕스러운 어조에 힘입어 매우 유쾌한 환상으로 귀결된다. 마지막 연은 지상적 존재들이 중력의 무거움을 떨쳐버리고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상승의 심리학을 보여주고 있다.

거세와 절단으로 이루어지는 부자지간의 상극 대신 이 시는 아낌없이 빌려주고 벗어주는, 자발적 헐벗음을 통해 오히려 풍요와 구원에 이르는 모녀(자매) 사이의 여성적 친화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몸을 벗어버림으로써 달로 화하는 두 여성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달처럼 죽음을 이기는 삶의 여성적 원리를 대변하고 있다.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