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갈무리하는 12월이다. 이달에는 거장의 작품세계를 훑어보거나 하나의 주제 아래 묶인 영화들을 뚝딱 정리할 수 있는 영화제가 적지 않다. 두 편의 영화만 붙여놓아도 ‘제3의 인상’이 만들어지는데, 영화제에 모인 영화들이 저희들끼리 몸을 비비고 섞으며 빚어내는 모자이크는 얼마나 오묘할까. 아직도 많은 관객들이 발품과 시간을 들여가며 영화제를 찾는 까닭이다. 낱개의 영화로는 그릴 수 없는 거대한 벽화를 보고 싶기에.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들은 13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대학로에 잠시 둥지를 튼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과 함께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 활동을 한 클로드 샤브롤은 28세에 장편 데뷔작 ‘미남 세르쥬’(1958)를 내놓으며 줄거리보다 감각적 표현력을 중시하는 누벨바그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감독. 하이퍼텍 나다 극장(02-766-3390)에서 열리는 회고전에는 ‘미남 세르쥬’부터 올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최신작 ‘악의 꽃’까지 14작품이 관객들을 맞는다.
60여편의 영화를 만든 그는 주로 부르주아의 평온 속에 숨은 뒤틀린 욕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 영화제에는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차지한 ‘사촌들’(1959), 이자벨 위페르에게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마담 보바리’(1991) 등 그의 대표작들이 포함돼 있다.
부산에서는 13일부터 28일까지 하워드 호크스 영화제가 열린다. 로베르 브레송 영화제, 미조구치 겐지 회고전 등 굵직한 영화제들을 마련해온 부산시네마테크(051-742-5377)의 올해 11번째 기획영화제. 하워드 호크스(1896~1977)는 1926년 무성영화 ‘영광의 길’로 데뷔한 후 갱스터, 웨스턴, 스크루볼 코미디 등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여러 장르에서 48편의 작품을 만든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거장이다.
존 웨인이 주연한 서부극 ‘레드 리버’(1948), 험프리 보가트를 볼 수 있는 필름 누아르 ‘빅 슬립’(1946), 캐서린 헵번과 캐리 그랜트가 호흡을 맞춘 스크루볼 코미디 ‘아기 키우기’(1938) 등 1930~60년대 발표된 12편이 상영된다. 이정희 프로그래머는 “하워드 호크스는 할리우드 영화의 모든 고전적 장르에서 대표작을 발표한 보기 드문 감독”이라며 “국내에서는 볼 기회가 적었던 그의 영화들을 장르별로 섭렵할 기회”라고 말했다.
짧지만 강렬한 단편 영화들을 보고 싶다면 서울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02-790-6295~6)로 갈 일이다. 13일부터 16일까지 이곳에서 열리는 제1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본격 단편영화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656편의 응모작 중 ‘아랏사’ ‘절대음감’ 등 본선에 오른 43편(해외 17편)이 상영되며, 이 가운데 10편 안팎의 수상작은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아시아나 국제선 여객기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로만 폴란스키와 제인 캠피온 등 여러 거장들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거장들의 첫사랑’, 엘리베이터 안에서만 촬영된 단편들을 한데 묶은 ‘엘리베이터 무즈 무브먼트’, 체코에서 ‘뜨는’ 애니메이션 감독 아울렐 클림트의 독특한 단편 6개를 모은 작품전 등 3개의 특별전도 마련돼 있다.
서울 광화문 아트큐브(02-2002-7777)에서는 12일부터 15일까지 ‘이미지의 연금술’을 주제로 실험영화제가 열린다. 비틀즈의 존 레넌을 다룬 ‘존의 생일을 기억하며’ 등 24편의 영화들이 무료로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