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격포항 거리.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핵 폐기장이 백지화되기 전에 다 굶어죽을 판입니다.”

전북 부안군 격포항. 주말이면 전국 각지의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한바탕 난리법석을 벌이는 이곳엔 트럭 몇 대만이 서 있었다. 몇몇 낚시꾼을 제외하고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채석강으로 유명한 사시사철 관광지,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전북의 얼굴’이란 말이 무색했다. 상가마다 색 바랜 ‘핵 반대’ 깃발이 내걸렸고, 거리엔 ‘광어·농어도 반대하는 핵 폐기장은 절대 안돼’라는 노란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수협 격포 지점 근처의 격포어촌계 회센터. 횟집 수십여 곳이 늘어섰지만 손님을 받은 곳은 거의 없었다. “손님 기다리기도 이젠 지쳤다”는 상인들은 난롯불을 쬐며 졸고 있었다. 김 모(여·43)씨는 “세 살 먹은 애들도 손님 없는 걸 다 아는데, 가게 내놓는다고 누가 입질이나 하겠느냐”며 “이렇게 주민들이 말라죽는 걸 정부는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매스컴에서 부안은 만날 데모하고 쌈박질하는 전쟁터라고 떠드는데 어느 정신 나간 관광객이 이곳을 찾겠소….”

주차장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던 종업원 정 모(27)씨는 “요즘 워낙 장사가 안 돼 월급 달라고 하기가 미안할 정도”라며 “몇몇 동료들이 놀이공원 앞에서 어묵 장사를 한다고 떠났지만 거기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다들 놀고 있다”고 했다.

터미널 옆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만든 격포 개인택시 사무실에선 기사 서너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택시영업 13년째라는 김희광(47)씨는 지난 일요일 2만3000원을 벌었다고 했다. 그는 “점심·저녁 식사하고 1만1000원 가스 충전했으니 주머니에 얼마 남았겠냐”며 담뱃갑을 찾았다. 그는 얼마 전까지 채석강 입구를 지나려면 길이 막혀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요즘은 지나는 차가 없어 원하는 시간에 바로 간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길가의 격포지역발전협의회 사무실은 몇 달 전까지 낚시 도구를 대여하고 크릴새우를 팔던 곳이었다. 변산대책위의 정명식(35)씨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0.5t짜리 FRP 모터보트를 운영했지만, 최근 몇 달간 보트에 시동을 건 것은 해상 시위 나갈 때뿐”이었다고 말했다.

“보트 밑바닥에 파래가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자식들이 셋이나 되는데, 뭘로 먹이고 가르칠지, 올 겨울을 어떻게 날지 그저 폭폭합니다.”

신상규(52) 격포지역 대책위원장은 “격포와 진서에서 관광으로 돈 벌지 않으면 부안은 다 죽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고장에 왜 핵 쓰레기장을 세우려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됩니다”라고 했다.

“내년에 주꾸미를 잡으려면 요즘같이 날 좋을 때 부지런히 어구를 손질해야 하는데 요즘 그럴 정신이 있겄소. 소라껍데기 10만개를 손질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

신 위원장이 푸념을 늘어놓자 그 옆을 지나던 한 40대가 “그럼 뭐하는디요? 방폐장 들어서면 어차피 잡아도 팔아먹지도 못할 주꾸민데…”라고 한마디 홱 던지고 지나갔다.

변산반도 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지난 7월 이후 부안 지역의 관광객 수가 작년보다 20% 정도 줄었다고 밝혔다. 박기연 관리과장은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작년에 내방객이 30% 증가해 올해도 상승세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었다”며 “특히 격포 지방의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