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가을, 내가 처음으로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들어섰을 때 “세상 천지에 이런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락여성을 거느리고 있는 포주,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같은 전과자, 오갈 데가 없어 헤매다 기웃거리는 부랑자, 노인, 장애인, 가정이 파괴된 자들 등이 동네의 구성원이었다.
하루라도 술에 취해 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장면을 보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삶의 목적도 없이 절망만이 이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외부인들은 이런 모습에 겁을 집어먹기 십상이지만, 사실 이 동네에는 사회의 약자, 소외된 자, 외로운 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지난 94년부터 쪽방촌의 주민들과 노숙자들 약 450여명에게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해왔다. 이 일은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문을 듣고 한두 명씩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세 끼 식사만 하더라도 하루에 80~100㎏의 쌀이 들어가므로 한 달이면 어마어마한 양이 필요하다. 어떤 분은 매달 2000원씩, 또 어떤 분은 돼지 저금통을 헐어서 보내오시고, 어떤 분은 쌀을 사 가지고 직접 가져와서 충당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와서 30여명의 노인과 장애자들의 밑반찬을 만들어 돌린다. 또 어떤 이는 노인들을 모시고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시켜드리고, 일부는 방 청소와 도배를 해준다.
7년 전부터 일과 후 쪽방에서 의료봉사를 해주시던 한 의사 선생님은, 최근에는 아예 교회 근처로 이사 오셔서 치료해주신다. 인근 미용실에서는 매월 첫 주에 와서 이곳 주민들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기도 한다. 강원도에 사는 어떤 분이 고랭지 배추 3000포기를 준다 하여 화요일에 뽑아 가지고 와서 수요일부터 김장을 담으려고 한다. 올해는 김장배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봉사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좋다는 것은 알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경제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유로 봉사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영등포 쪽방촌에 오는 자원봉사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 평범한 사람이다.
봉사는 각자 자기에게 부여된 달란트(능력)를 활용하여 방 청소와 목욕 등의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곧 닥칠 추운 날씨에 대비할 수 있는 내복 1벌을 사다주는 것도 봉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영등포 쪽방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이 많다. 다들 겉으로 병들고 속으로 상처 입은 이 시대의 슬픈 사람들이다. 이들을 도와야 우리가 도움을 받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이들을 외면하면 이들은 우리를 해칠 것이다. 이들이 다루기 힘든 소위 ‘꼴통’들이기 때문에 쳐다보기도 싫다지만 “사랑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미울지라도 다시 한 번 손 내밀어 잡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청년 때에 가끔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멀리 서서 변함 없이 봉사하고 있는 가로등을 보았다. 그때에 가로등은 말없이 꾸준히 하는 봉사가 주변을 밝게 하고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당신의 손이 이런 가로등과 같은 따뜻한 손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이 추운 겨울에 백화점 앞의 대형 트리보다 당신의 작은 따뜻한 손이 필요하다. 성경은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윤택해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서 겨울이 와도 겨울 추위를 모르고 살고 있는 이들이여, 혹시 영등포 쪽방촌에 한 번이라도 가보았나요. 거기에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의 이웃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요.
(임명희·광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