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런 주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 위대한 37편의 희곡과 시집·소네트집, 문장마다 주옥같은 대사들을 모두 단 한 사람,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가 썼다는 게 가능한 얘긴가? 셰익스피어란 인물은 사실 고리대금업자였고, 가난한 극작가들에게 돈을 빌려주곤 대신 자기의 이름으로 글을 발표하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터무니없는 억측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애는 상당수가 베일에 가린 수수께끼였다는 데서 기인한다. 많은 셰익스피어 전기 작가들이 그를 하나의 ‘기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가 살았던 튜더 사회와 제임스 1세 치하의 사회라는 시대상을 소홀히 다뤘고, 기초적인 자료에 대한 조사도 만족스럽게 이뤄지진 못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극작가’ ‘불꽃과 장미꽃과 칼날과 재치와 웃음의 언어’ ‘만세(萬歲)에 통용되는 작가’…. 그럼, 그런 인물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는가?
영국 리즈대학 영문학부 명예교수가 쓴 이 책은 ‘역사 속의 인물 셰익스피어’를 입체적으로 다룬 야심만만한 평전이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기록보관소와 각종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들을 샅샅이 뒤지며 그의 작품, 가족관계, 경력, 교유했던 인물, 시대적 배경을 추적하며 추측과 왜곡의 ‘뼈’를 발라냈다.
중상류 상공인의 아들로 태어난 셰익스피어의 어린 시절은 부유했지만, 14세 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그래머 스쿨’에서 라틴어를 익혀 서양 고전을 섭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18세 때 8세 연상의 부인과 결혼하고, 런던의 극장을 전전하며 시골학교 교사, 귀족의 심부름꾼 일을 하기도 했다. 30세가 된 1594년부터 극단에 소속돼 본격적인 극작가 생활을 시작하고, 20년간 전속 극작가 겸 공동 경영자, 때론 직접 공연하는 연기자가 된다.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등 4대 비극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과 창작 과정의 고뇌들은 시대와의 연관 속에서 생생히 살아난다. 예를 들어 ‘오셀로’가 공연되던 시기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다른 책에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동료 11명은 하급 궁내관으로 당시 18일 동안 파티 시중을 들 수밖에 없었고,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정확히 21파운드 12실링 0페니가 지급됐다. …보수가 형편없었던 이 시기를 지나고 나서 비로소 ‘오셀로’는 1604년 11월 1일 궁전에서 공연됐다. 이슬람 터키족에 맞선 베니스의 전쟁에 주목하는 걸 보면 이 작품은 가볍게 제임스 왕을 띄워주고 있는 건지 모른다.”
역자는 서울대 영문과 출신인 김정환 시인이다. 그는 “책을 번역하느라 어영부영 학생 시절 방식으로 다시 읽고 보니 정말 셰익스피어 문장·문학이야말로 나이 먹을수록 아름다워지는 ‘나이의 문학’인 듯하다”며 “혹시 예순까지 살면 셰익스피어 전작을 번역하려고 맘먹었는데, 이 책을 번역하다가 계획을 10년 앞당겼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 49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