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공화국 시절 ‘요정 정치’의 산실인 대원각(大苑閣)의 여주인이었던 고(故) 김영한(99년 사망 당시 83세) 할머니의 딸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사이에 벌어진 유산다툼이 법원의 조정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서울지법 민사19부(재판장 박찬·朴燦)는 25일 김 할머니의 외동딸 서정온(58)씨가 KAIST를 상대로 낸 유류분(遺留分) 반환 청구소송에서 “KAIST는 서씨에게 44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서씨가 원할 경우 기간에 제한 없이 김 할머니가 120억여원을 기부해 KAIST에 세워진 ‘글로벌장학재단’에 이사로 취임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유류분이란 사망 전에 재산을 타인에게 증여나 유언을 통해 처분했을 경우 상속권을 가진 사람의 생계를 고려해 일정 재산을 원래 상속권자의 몫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으로 서씨처럼 직계비속의 경우 상속액의 절반이다.
3년을 끌어온 이번 법정다툼은 김 할머니가 99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재산 가운데 현금과 부동산 등 31억원을 딸에게 남긴 반면 나머지 재산인 서울 서초동 빌딩 등 122억원 상당 모두를 “과학기술 발전에 써달라”며 KAIST에 기증하면서 발생했다.
재판부는 “김 할머니가 자신의 재산을 좋은 일에 써달라는 뜻에서 KAIST에 유증한 만큼 이 뜻을 깊이 이해해달라는 말에 서씨가 동의해 조정이 성립됐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지난해 3월에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공시지가 8억5000여만원의 성북동 임야 480평을 환경운동연합에 기증하기도 했다.
금광을 하다 파산한 친척 때문에 권번기생 생활을 시작한 김 할머니는 시인 백석(白石·1912~1995)의 연인 ‘자야(子夜)’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백석을 기리기 위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고 ‘내 사랑 백석’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서씨 대리인 정영원 변호사는 “서씨가 재산을 탐낸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KAIST처럼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관이 아닌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목적에서 소송을 낸 것”이라며 “이번에 조정을 통해 받는 상속분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는 게 서씨의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