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는 장진근(張鎭根·29)씨에겐 악몽 같은 장소였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며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는 24일 이곳에서 개막된 제6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제과제빵 분야 국가대표다.
다음날 겨우 몸을 추스린 그는 “빨리 버터를 구해달라”고 요구했다. 본 경기에 임하기 전 한 번이라도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컨디션이 엉망이었지만, 결국 그는 먼지 자욱한 인디라 간디 실내경기장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말았다.
고교 졸업 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의족(義足)으로 변하면서 직업군인이 되겠다던 꿈을 접은 지 10여년. 자기 삶과는 정반대인 화려한 데커레이션에 생을 건 끝에 세계 최정상에 선 것이다. “택시운전에서 회사 생활까지 안 해본 게 없죠. 이제는 제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교사가 돼 제 기량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5살 때 골수염을 앓다 3년 만인 8살 때 우측 다리가 소아마비에 걸린 정은자(鄭銀子·여·39)씨도 이날 화훼 장식(동양) 분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충북대 원예학과 졸업 후 꽃꽂이 사범 1급 자격증을 획득했지만 정규 직장 경험은 한 번도 없는 그녀였다.
“워낙 경기장 시설이 안 좋아 서있는 것 조차 불편했지만 꽃을 꽂는 것이 이미 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그녀는 “앞으로 사회 참여 활동도 늘리고 저보다 더 불우한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뇌성마비 3급으로 웹마스터 분야에 나선 안중헌(安重憲·33)씨는 이번 대회에서 꼭 우승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지난해 친구 3명과 함께 차린 벤처기업 ‘모두클릭 웹마스터’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런 소망은 김지향(金智向·여·29)씨도 안씨 못지 않다. 초등학교 때 열병으로 청각을 잃으면서 캐드(CAD·컴퓨터설계) 분야 대표가 되기까지 뒷바라지 해준 아버지와 동생들, 그리고 지난해 결혼한 한 살 아래 신랑이 매주 훈련장을 방문해 보내준 성원을 잊을 수 없다.
지금 뉴델리에는 이런 저런 사연을 지닌 한국 장애인 선수 30명이 모여 있다. 1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시련, 차별, 냉대를 풀고 싶은 가슴속 열망(熱望)은 인도 대륙을 달구는 붉은 태양보다 더 뜨겁지만 그들은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 숙명이고, 누구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건 우리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32개국이 출전하는 규모에 종합 3연패 달성이 목표. 하지만 이들이 뉴델리에 오기까지 그 누구도 따뜻한 말 한 번 건네지 않았다. 2년에 걸친 선수 선발 과정에서도, 3개월간 합숙 때도, 지난 20일 밤 인천공항을 떠날 때도 그들은 늘 외톨이였다.
선수 안내는 한쪽이 의안(義眼)인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담당자가, 휠체어를 탄 선수를 버스에서 오르내리는 일은 조금 체력이 나은 장애인 선수가 맡고 있다. 체력 보충을 위해 인도에서 식용(食用)이 금지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실랑이 끝에 들여와 현지 한국식당에 맡기는 것도, 무거운 장비를 끙끙거리며 옮기는 일도 모두 그들 몫이다. 인도인들은 가슴에 덩그러니 태극마크를 단 채 땀으로 범벅이 된 한국 선수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중연(37) 경기도 미금성모의원 원장은 자비로 고용한 대리(代理) 의사에게 병원을 맡긴 뒤 구급약과 수술장비까지 모두 자기 돈으로 마련해 선수단에 동행했다. 섭씨 27도와 10도를 오락가락하는 기온 차 때문에 하루 20여명의 선수들이 복통과 설사를 호소할 때마다 김 원장은 “따라오길 너무 잘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소아마비 장애를 겪으며 여러 병원에서 낙방의 쓰라림을 겪은 사람”이라며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돕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본·대만 같은 경쟁국은 물론, 자국인을 대거 심사위원에 기용하며 ‘텃세’를 작심한 인도의 견제까지 물리치자”고 그 스스로 소아마비 장애인인 신필균(申弼均·여·53) 선수단장은 지난 23일 밤 저녁 식사자리에서 외쳤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 입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면, 그들은 1인당 1200만원(금메달), 600만원(은메달), 400만원(동메달)의 일시금과 월 30만원도 안 되는 연금을 손에 쥐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이어 곧 깊은 무관심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것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뉴델리(인도)=문갑식기자 gsmo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