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영미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야무져서 다른 엄마들이 부러워 하는 아이다. 그러나 영미 엄마는 영미가 화를 잘 내고 소리를 잘 지르고 짜증을 잘 내는 성격 때문에 걱정이 되어 센터를 찾아 왔다. 엄마는 또 영미가 공부 못하는 친구들을 무시하고 깔보며 누르려고 하는 것이 아이답지 않아서 염려된다고 했다.

영미는 센터를 방문한 당시 과외를 11가지나 하고 있었다. 영어 회화와 문법, 수학, 과학 학습지, 웅변, 논술, 성악 레슨, 미술. 주말에는 역사 공부 및 탐방, 체육까지 더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데다 과외활동이 많으니 영미가 친구들과 놀거나 편히 뒹굴 수 있는 시간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영미 자신이 잘 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이 많은 과외활동들을 잘 해내고 있었다.

영미와 처음 면담할 때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영미는 가끔씩 ‘나도 조금 놀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엄마한테 말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소원은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새가 되어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고, 답답할 때가 있다고 했다. 언제 답답하냐고 물으니 “시험을 안 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시험을 못보면 속이 뭉클해져서 속상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또 다른 소원은 “공부를 골고루 다 잘해봤으면 좋겠고,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훌륭하고, 나의 나쁜 점이 안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미에게 완벽하게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 부담감은 잘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정받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이다.

심리 평가 결과 영미의 지능은 우수한 수준이었지만 정서적인 면에는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속으로는 과도한 긴장감이 있고 외부 세계에 대해 예민하고 경계하는 면이 많은 심한 정서적 불안정 상태에 있었다. 이 때문에 집에서 자주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또한 학교생활에서 성공적인 학습생활을 하는 것과 달리 영미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고 열등감을 느끼고 있으며 우울한 상태였다. 또한 친밀감과 관련해 과도한 긴장감과 불안이 나타났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영미가 부모로부터 이해받거나 따뜻한 상호작용의 경험이 부족하고 일방적인 관계만 경험했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유감스럽게도 영미는 지속적인 상담을 받지 못하고 센터를 한 번 방문한 것으로 끝이 났다. 영미가 속으로는 힘들지만 겉(특히 학습)으로는 잘 지내고 있었기에 심리 평가의 심각성을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영미처럼 악착스레 잘해 보려는 아이는 많은 과외활동을 하면서도 성적이 잘 나오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공부를 잘 하려면 뭐든지 스스로 하는 자발성부터 길러야 한다. 영미가 공부를 잘 하려고 기를 쓰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발성이 아니다. 기준점이 자신에게 있어야 하는데 영미의 경우 사랑받기 위한 미숙한 상태일 뿐이다. 부모는 성적 하나만 보지 말고 아이의 정서적인 면과 성격적인 면의 고른 발달을 염두에 두고 과외활동을 시켜야 한다.

(신철희 원광아동상담센터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