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2동의 삼환아파트에 사는 학원강사 김모(46)씨. 그의 부인은 지난 4월 유방암 3기 판정을 받고 입원했다. 갑자기 쌀쌀해진 16일 아침에도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아내 병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면 언제부터인가 거실에는 마른 빨래가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고, 식탁 위에는 돼지 불고기가 준비돼 있었다. 냉장고에 아이들 밑반찬도 들어 있었다. 누군가 집을 비운 사이에 몰래 들어와 청소, 빨래와 요리를 다 해놓고 간 것이다.
“매일 아침 아내 문병을 다녀오면 꼭 이렇게 돼 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7개월째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김씨 아파트의 ‘이웃사랑 봉사단’ 회원들이었다. 봉사단은 2002년 9월에 만들어졌다. 회장 이재공(72)씨는 “작년 여름 할아버지 한 분이 공터에서 쓰러졌다가 뒤늦게 후송된 일이 있었다”며 “그 사건을 계기로 마을 노인회와 부녀회가 이웃을 챙겨주자고 나섰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모두 60여명. 이번에 김씨 소식을 전해들은 회원들은 “당장 김씨 집 아이들이 걱정돼 회의를 열어서 도시락과 빨래 당번을 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하면 김씨가 미안해 안 받아들이려고 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김씨가 집을 비운 사이 아파트 수위실에서 열쇠를 받아 들어가기로 했다. 열흘쯤 지나서야 김씨는 비로소 자신의 가족을 돕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날 빨래 당번을 맡았던 한 주민은 “삭막한 아파트 단지 생활에서 이렇게 정(情)을 나누다 보면 결국 나한테도 좋은 일로 돌아오지 않겠느냐”며 “부인이 완쾌하면 축하파티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미 낯선 단어가 되어버린 ‘이웃사랑’을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