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지지 기반이었다는 이른바 ‘수니파 무슬림 삼각지대(Sunni Triangle)’의 아래쪽 변(邊)에 있는 인구 30여만명의 팔루자(Fallujah)시(市).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60㎞ 떨어진 이곳을 찾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팔루자로 들어가는 길이 없어져 이라크인 운전기사는 차를 이리저리 몰았다.

이라크의 여느 중소 도시처럼 팔루자엔 온통 황토색인 초라한 건물들이 낮게 깔렸다. 그러나 공터 한쪽 벽에는 ‘팔루자는 언제나 미국인의 묘지’라는 검은 글씨가 쓰여 있었고, 이곳에 팽배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Wahhabism)’을 반영하듯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천을 두르고 사원 입구에서 구걸하는 몇몇 여자를 제외하곤 길거리에서 여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와하비즘은 가장 극단적인 이슬람 분파로, ‘이슬람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들은 아랍권에서 미국 등 서방세계의 영향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전 정권이나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도 와하비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바그다드의 후세인 대통령궁에 자리잡은 미 군정청 앞에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 신봉자들이“이라크를 이라크인에게라는 플래카드를 내세우고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팔루자에선 지난 4월 말 미군 제82공정사단 병력의 발포로 시위 군중 18명이 죽은 이래 지금까지 미군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브래들리장갑차가 폭파돼 2명이 죽는 등 지금까지 근 40명의 미군이 살해됐다.

10일 정오 이곳 하무디 알 마흐무드사원에서 기도회가 시작됐다. 예배 진행자인 이맘(imam)이 라마단 금식과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지만 45분쯤 뒤 기도를 마치고 나온 주민 200여명은 이날 아침에 있었다는 가게들에 대한 미군의 ‘강압적인’ 수색에 흥분해 있었다. “미군들이 식품을 사는 여자들까지 마구 끌어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향해 돌을 던졌고 미군이 공포(空砲)를 쐈다”고 했다. 몰려든 사람들은 물어볼 틈도 없이 “라마단 첫날(10월 27일)부터 미군 수색이 계속됐다” “우리는 결코 점령이나 노예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 시의회 의원인 아부(Abu) 알리(46)는 “팔루자는 지금 유일하게 이라크의 자유를 되찾으려는 곳”이라며 “미국은 유엔을 통해 이라크를 차지하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총이 있고, 우리가 죽으면 우리 애들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50년 전 4억명의 인도인은 영국에 아무 저항도 못하고 문화도 바뀌었지만, 1917년 인구 1000만명의 우리는 영국 지배를 3년 만에 걷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길에서 나눈 그와의 대화는 도중에 주변 사람들이 “미국은 최대의 악마”, “미국이 슬퍼할 때 우리는 기뻐한다”, “기도하면서 미군을 저주했다”는 등의 발언으로 끼어들었기 때문에 계속 끊겼다.

누가 왜 미군을 공격하는가. 이곳에서 금호타이어를 파는 상점 주인인 나자흐(Naghah·42)씨는 “공격 주체의 95%는 우리 주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단순한 사람들이다. 우리를 도우러 온 줄 알았던 미군이 우리 형제를 죽이고 상점을 부수는데 가만히 있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에겐 잘못한 사람의 전체 가문이 피해자 가문에 사과하고 여자들의 바깥 출입을 금하는 나름대로의 사회 질서가 있는데, 미군은 수색한다고 총 들고 여자들이 있는 내실(內室)까지 막 들어간다”고 했다. 상점에서 만난 아미드(Amead) 카젤(34)은 “이건 복수이고, 앞으로도 계속된다”며 “만약 한국군이 올 생각이라면 우리가 8년간 이란과 어떻게 싸웠는지 배우고 오라”고도 했다.

전날 오후 바그다드 미 군정청 앞 대로에선 100여명의 와하비즘 신봉자들이 ‘이라크를 이라크인에게’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한 노인의 선창에 따라 “알라후 이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거듭 외쳐댔다. 성경에 묘사된 이집트를 나온 유대 민족이 예리고성을 앞에 두고 ‘무너져라’를 외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군정청 입구를 지키던 미군 에이브럼스 탱크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잠시 뒤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