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번화가인 신주쿠(新宿). 일본어 간판으로 뒤덮여 있는 이 거리에 가야금과 장구 등 우리의 옛악기로 매장을 꾸민 작은 가게가 있다. ‘리틀 한국’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일본 내 유일한 한국 전통 악기점으로 알려진 ‘BBD(Big Business Dream)’.

8평이 채 안 되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아쟁, 징, 꽹과리에서부터 미투리, 부채 등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매장 안에는 구성지고 찰진 판소리 가락이 흐르고 있다. 일본 속에서 우리의 옛악기를 알리고 있는 주인공은 한국인 김스랍 (34)씨.

“지금까지 일본에는 한국 전통 악기를 파는 곳이 없었어요. 한국에 여행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하는 게 고작이었죠. 주위에 ‘한국 매니아’가 많았는데 한국 음악을 배우고 싶어도 악기를 구할 수 없어 포기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김씨가 이국땅에서 우리 옛 악기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나선 것은 2년 전. 5년 간의 학업을 마치고 귀국 준비 중이던 김씨에게 아버지 김현곤(66)씨가 “일본에서 전통 악기점을 꾸려 보라”고 권했다. 김현곤씨는 기록에만 남아 있던 궁중 악기 편종·편경을 한국서 처음으로 재현한 장인(匠人)으로, 종로에서 전통 악기점을 꾸리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일본에도 한국 악기점을 열어 달라고 아버지에게 계속 요청했어요. 아버지는 일본어를 잘하는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셨어요.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 악기점 운영엔 자신감이 있었지요.”

하지만 막상 전통 악기를 파고들려 하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김씨는 모르는 게 있으면 일본에 오는 한국 악기 연주자 선생님을 찾아 물었다. 밤늦도록 책과 인터넷을 뒤지고 관련 기관에 물어 보며 견문을 넓혔다. 지금은 음색만 들어도 북한 악기와 한국 악기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북한 가야금은 개량 기술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어요. 음정을 넓혀서 서양의 하프처럼 음색도 다양하지요. 한국 가야금보다 훨씬 청명한 음을 내뿜는 답니다.”

일본에서 한국 악기를 다루는 일은 무척 까다롭다. 한국 악기는 90% 이상 오동나무로 만든다. 그런데 이 오동나무가 여름엔 습기가 많고 겨울엔 건조한 일본 기후에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가습기나 공기 청정기를 틀어 놓는 건 기본이에요. 마치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 같아요.”

김씨는 “한국 음악은 사물놀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악기 종류가 많다며 놀라는 일본인도 많다”고 했다.

“일본 사람이 한국 악기를 배우고 싶어도 악보가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한국 음악은 정간보로 돼 있어서 일본인이 알아 보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선보로 악보를 보기 쉽게 바꾸고 일본어 번역을 했죠.”

김씨는 한국을 방문하기 어려운 나이든 동포 노인들에겐 고국의 향수를 달래 주는 사랑방 안주인 역할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매장을 찾아왔어요. 유리창 너머로 한복이 진열돼 있어서 들어와 봤대요. 한국이 너무 그립다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패티김의 ‘이별’을 불러 달라고 하더군요.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김씨는 단순히 악기만 팔진 않는다. 작년 말부터는 가게에서 대금 등 전통 악기를 가르치는 ‘전통 음악 교실’도 열고 있다. 음악 교실엔 한국 고유 음악을 배우려는 일본인과 재일 동포가 일본 방방곡곡에서 몰려 든다. “비비디를 일본 열도에서 한국 음악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곳으로 만들 겁니다. 한·일(韓日) 관계도 음악을 통한 교류를 계속 한다면 좋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