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가을 개편을 했다. 특히 2TV에 새 프로그램이 많이 선보였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주부, 세상을 말하자’였다.

한국의 방송사들은 전업주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시청률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충성도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면 신용카드도 내주지 않는 카드회사처럼 방송사는 주부들을 홀대한다.

주부대상 프로그램에서조차 주부들은 ‘듣는 사람’ ‘야단맞는 사람’ ‘당하는 사람’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을 털어놓으면, 각계의 전문가 내지 삶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냥, 대충 참고 살라”고 김을 뺀다.

그런 점에서 새로 선보인 ‘주부, 세상을 말하자’는 어떤 기대를 갖게 했다. “주부가 말하고, 세상은 그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일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우선 프로그램을 만드는 자세가 느슨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다룬 주제는 ‘강남집값’ ‘이민열풍’ ‘수험생 문제’ ‘이혼’ 그리고, 고승덕변호사 초대석이었다. 이 주제는 그동안 다루지 않은 토론 프로그램이 없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이었다. 새로운 이야기도 없었고 날카로운 지적도 촌철살인의 유머도 없었다.

‘수다’와 ‘간섭’ 그리고 ‘강요’라는 아침 주부대상 방송의 비생산적 요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주부가 주체가 된 토론 프로그램이기에 그 원재료를 장보고 손질하는 사전준비가 특별히 중요했다. 그러나 그 준비가 소홀한 점이 그대로 눈에 띄었다.

또한 나온 주부들의 ‘요리실력’도 실망스럽고 의심스러웠다. ‘토론실력’은 안타깝게도 찜질방 수다 수준에 머물렀다. 사석에서도 돈내고 한다는 ‘남편자랑’‘자식자랑’을 공중파 TV에 띄우겠다는 ‘주부토론의 눈높이’가 같은 여성으로서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평소 우리가 보던 그 똑똑하고 당찬 독립적인 대한민국 주부들은 모조리 행방불명되었고 ‘부엌에서 세상을 본다’던 600만 주부는 실종되었다. 이것은 제작진 스스로가 ‘주부의 눈높이’를 의도적으로 낮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부가요열창만 스타가 있고 주부퀴즈만 달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토론 프로그램이야말로 ‘스타탄생’의 신화창조를 할 수 있다.

사회자 정용실 역시 좀더 분발해야 한다. 훌륭한 라디오 진행자로서 자질을 갖고 있지만,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부드러운 장악력이 부족했다. 적당히 끊어주고, 끓여주고, 간을 맞추는 ‘주방장 수업’이 필요했다.‘매우 정성들여 만든 드라마 ‘대장금’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정성’”이라고 이영애가 말했듯, ‘주부, 세상을 말하자’는 무엇보다 프로그램으로서 정성이 부족하다.

(전여옥 /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