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쌓은 청계천 호안석축(護岸石築·강이나 호수 등의 주변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축대)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은 5일 “청계천 무교동사거리 주변을 시굴(試掘·정식 발굴 전에 시험적으로 하는 발굴)한 결과 조선시대에 쌓은 호안 두 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호안은 50~60㎝ 크기의 네모나게 잘 다듬은 돌(장대석·長臺石)로 쌓았으며, 돌과 돌 사이에는 황토를 넣어 오늘날로 치면 시멘트처럼 접착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호안이 발굴된 두 지점은 청계천 북쪽에서 동-서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직선상에 위치해 있어, 두 지점 사이에도 호안이 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건축전문가 김동현 문화재위원은 “조선시대 청계천의 모습은 광교나 수표교 등 현존하는 일부 다리나 사진 등으로만 알 수 있었는데 호안 발굴로 조선시대 청계천의 폭이나 천변 주변의 실체를 처음으로 알 수 있게 됐다”며 “청계천 복원공사 때도 발굴된 호안을 모델로 석축을 쌓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계천 발굴지도위원인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도 “발굴된 호안은 자연하천이던 청계천을 직선화시키는 등 조선시대에 인공적으로 청계천을 변화시킨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며 “조선시대 도시계획이나 서울의 도시발달 과정까지도 살필 수 있게 하는 역사적 자료”라고 평가했다.
청계천 호안은 조선 초기인 태종·세종 때와 영조 때인 1773년, 고종 때(1870년)에 건설됐다고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돼 있다.
학계는 그러나 호안 쌓기는 인력과 물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태종과 세종 때는 개천 양쪽의 초목을 정리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며, 대대적으로 호안을 쌓은 것은 영조 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학계는 이번에 발굴된 호안도 영조 때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조는 생활쓰레기 등이 하천 바닥에 쌓여 청계천이 생활 하천으로서 구실을 못하고 수재(水災)가 계속되자 1760년 대대적인 준설 작업을 한 뒤, 1773년에 청계천 전 구간에 걸쳐 개천 흐름을 직선화시킨 다음 호안을 쌓았다.
영조는 청계천 준설과 그 사업을 시행한 동기를 기록한 ‘어제준천명병소서(御製浚川銘幷小書)’에서 탕평책과 균역책의 실시 그리고 청계천 정비를 자신의 3대 치적으로 꼽을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은, 1773년 8월 6일 청계천 호안 공사가 끝나자 당시 79세의 노령임에도 영조가 왕세손인 정조와 함께 광교로 직접 나가 준공된 석축을 시찰한 뒤 공사를 담당한 군사들에게 돈을 건네주고, 다리 밑에 모인 아이들에게도 돈을 던져 줍게 했을 정도로 큰 기쁨을 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계는 호안이 연결됐을 만한 곳에 대한 정식 발굴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는 6일 문화재지도위원회를 열고, 호안의 보존과 발굴 방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