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이사기자

황장엽씨가 미국 워싱턴에 머물던 마지막 날인 3일, 황씨측의 주선으로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호텔로 찾아갔다. 그쪽에서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 부른 것이었다. 그러나 황씨는 그를 경호(?)한다는 한국측 요원들의 강력한 제지로 호텔방을 나올 수 없었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던 기자는 전화로 통화만 하고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화로“만나서 할 얘기도 있고 미국 얘기도 듣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다”며 나중에 서울에서나 보자고 했다.

자유인인 황씨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가 보장된다고 자부하는 미국의 수도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못 만나고‘엄격한 통제와 감시 아래 반(半)격리 상태’(황씨의 방미를 주선한 디펜스 포럼측의 남시우씨 말)에 놓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두려워서 한국정부는 그의 미국 인사와의 모든 만남에 한국기관원을 2명씩 배석시키고 호텔 방문 앞에 보초를 세웠던 것일까? 황씨의 발언이 그렇게 민감하고 그럴 정도로 폭발력이라도 지녔단 말인가?

그의 방미가 시작된 지난달 30일 황씨를 쫓아 워싱턴에 온 독일의사 폴러첸측은 이런 e-mail을 관련자들에게 보냈다. "▲황씨가 한국당국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면 모든 약속은 물론 여행 자체
가 취소될 수 있으며 ▲미국 내 탈북자 기구와의 접촉이 금지되고 ▲언론인(아마도 미국 미디어를 의미)과의 접촉도 금지됐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email은"그는 그가 정말 자유로운 미국
에 와 있는지, 여전히 평양 또는 서울에 있는 것인지 헷갈려 한다"고 덧붙였다.

황씨가 미국 의회의 콕스나 하이드 의원을 만나러 갔을 때 콕스 의원측에서 배석을 요구하는 한국 기관원을 억지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몸 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고 그가 국무부의 켈리 차관보를 만났을 때는 한국기관원이 먼저 방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요지부동이었다고 남씨는 전했다. 기관원들은 심지어 초청자인 디펜스 포럼측 수행원의 동행을 완력으로 방해하거나 교란시키고 자리에서 밀어내려 했다면서 남씨측은 분개했다.

한국정부측의 주장은 황씨가 북으로부터 신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경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분이 확인된 사람까지도 접촉을 금했다. 초청자측은 “그들은 황씨가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강경파)을 도와주는 어떤 발언이나 행동도 용인하지 않으려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황씨는 북한 김정일의 독재와 인민해방의 절실함을 강조했을 뿐 한국 국내사정, 한·미관계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대북 유화세력(리버럴 세력)은 그가 때마침 무르익은 6자회담의 성사에어떤 악영향을 미칠까 염려해서인지, 또 미국 내 강경파인 부시 지지세력은 모처럼 나온 부시의 대북안전보장 제의가 희석될까 우려해서인지 황씨의 방미에 그리 떠들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황씨 자신도 앞으로 일본도 가야 하고, 또 국내에서 할 일도 있는데 굳이 이번 방미 건(件)으로 한국 당국의 비위를 건드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씨는 워싱턴을 그저 시키는 대로 군말없이 다녀간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결국 노무현 정권의‘황씨 방미 왜소화 작전’은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김대중 정권과 차별화해서 막무가내로 버티지도 않았고, 미국에 보내주는 대신 교묘히 손발을 묶고 입조심을‘협박’해서 결국‘보냈지만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고 자족할지 모른다. '민족의 문제를 미국에 가서 고자질한다’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채색하는 효과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 정권은 잃은 것이 있다. 디펜스 포럼의 미국관계자는“한국이 그런 점에서 성숙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폐쇄적이고 이렇게 자신없는 나라인 줄은 몰랐다”며“한국 당국이 북한의 눈치를 너무 살피는 것 같아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크게 먹칠당했다.

황씨는 한국당국의 그런 의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북한체제에 관한한‘할 말’을 했다. 의회 내에서의 연설,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등에서 그는 김정일 체제를 겨냥한 경고와 미국을향한 엄밀한 충고들을 강고하게 쏟아놓았다. 그래서 디펜스포럼의 대표 수잔솔티는“온 것만으로 성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대중·이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