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논설위원 <a href=http://db.chosun.com/man/><font color=#000000>[조선일보 인물 DB]</font><

1999년 남미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실시한 날은 우연히도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투표 날짜로 제안했던 12월15일로 같았다.

차베스 대통령 취임 이후 베네수엘라는 완전히 양분됐다. 다수 빈민층의 지지로 당선된 차베스는 이른바 민중주의를 내세운 정책을 펴나갔다. 저항이 생기자 차베스는 이를 국민투표로 돌파하려 했다.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고 나라 이름 앞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새로 붙이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국민투표일인 12월15일이 다가오자 온 나라가 찬·반 정치 열풍에 휩싸였다. 그러나 정작 더 무서운 것이 이 나라를 덮쳐오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며칠 전부터 수도 카라카스의 북쪽 지방은 검은 먹구름에 덮이기 시작했다. 내리는 비는 12월13일부터 폭우로 바뀌었다. 14일엔 길 건너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선 오로지 국민투표 열풍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나라를 돌며 반대파를 “꽥꽥거리는 돼지들”이라고 비난했고, 반대파는 “포퓰리즘 독재”라고 맞섰다. 수도 카라카스의 거리는 찬·반의 시위대와 깃발로 덮이고 언론은 여기에만 정신을 팔았다.

이렇게 대통령과 정부, 언론으로부터 방치된 가운데 북부지방은 14일 밤이 되자 그때까지 이틀간 내린 비의 양이 지난 2년간 내린 총강수량을 넘어서게 됐다. 사람들은 집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12월15일 베네수엘라 국민투표의 날이 밝았다.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북부지방에선 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사태가 도시들을 덮치자 사람들은 밤에 탈출을 시도했다. 사람들이 카라카스로 가는 하나뿐인 도로로 밀려들어 만원을 이룬 가운데 옆의 산이 다시 무너지면서 덮쳤다. 엄청난 사람들이 생매장됐다.

북부 중심도시 바가스에선 산사태가 건물 잔해를 동반해 도시를 시속 50㎞가 넘는 속도로 쓸고 지나가는 ‘잔해흐름’이란 현상까지 발생했다. 남녀노소가 비명도 못지르고 산더미 같은 흙에 깔리고 거센 탁류에 휩쓸려 나갔다.

그 사이 차베스는 승리했다. 사실 그의 승리는 기정 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네수엘라 빈민층은 대선 때도 그랬고 국민투표 때도 차베스를 지지했다. 차베스는 승리가 확실해지자 “평화혁명이 시작됐다”고 기염을 토했다.

북부지방의 비는 12월 17일에 그쳤다. 비가 그치자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은 사라진 도시와 여기저기서 울부짖는 아이들이었다. 국민투표에 정신이 팔려있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17일에야 재난 지역에 나타났다. 그들은 사망자 수를 ‘1500명’이라고 발표했다가 곧 “사망자수 추정이 어렵다”고 바꿨다.

재난지역에 이번에는 질병과 강도·강간이 횡행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 참상이 전 세계에 알려진 다음인 20일에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베네수엘라 언론이 뒤늦게 재난지역으로 카메라를 돌리자 국민투표에 정신이 팔려있던 국민은 경악했다.

20세기를 통틀어 남미 지역에 닥친 최악의 재난은 이렇게 베네수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온 나라가 정치 열풍에 휩싸여 대통령도 언론도 제대로 모르는 사이에 참극이 국민을 삼키고 갔다.

지금 우리나라도 정치가 열풍이다. 사실 언제나 우리는 우물안 정치 열풍이다. 세계의 정세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도 우리끼리 국민투표다 뭐다 하면서 매일 지지고 볶는다. 대통령과 정당은 총선에 몸이 달아올랐고 언론은 그 정치만 쫓아다니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머리 위에 어떤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는지 과연 어느 누가 지켜보고 있는가. 중국과 일본의 거대한 그늘이 한반도를 덮쳐오고 있는데 우리는 끝내 산사태를 뒤집어 쓰고서야 경악할 것인가.

베네수엘라 국민투표날 덮친 재앙으로 최소 3만명이 사망·실종됐다. 그것도 정부 추정치일 뿐이다. 이 사태를 기록한 한 필름은 폐허가 된 집 벽에 누군가 써놓은 글을 보여주며 끝난다. “여기서 우리 가족의 27년 역사가 끝났다.”

(양상훈·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