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보면 ‘외국인 관광객 탑승’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 승합차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아마 외국인이 창밖으로 우리를 보고 있으니 행동을 잘 하라는 뜻이거나, 외화벌이 중이니 내가 좀 끼어들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해하라는 뜻이리라.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에 익숙해 있는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십분 이용한 ‘권력행사’가 숨어있다. 물론 타인의 응시를 의식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공자(孔子) 역시 선비는 모름지기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이른바 신독(愼獨)을 가르침으로써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무형의 감시자를 만들어놓고 나를 응시하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 진정한 뜻은 왜곡되고 형식만 남다보니 자아를 위한 삶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삶을 지향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개성의 중시를 표방하며 갖가지 튀는 표현을 연출하지만 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한 몰개성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인터넷과 같은 현대 사회의 독특한 익명성은 응시로부터 해방된 방종의 자유공간이 되어버려, 필부들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는 순간, 나를 억압했던 타자에 대하여 하이에나처럼 몰려다니며 마음껏 보복한다.

이 모든 것이 자아가 나의 진정한 욕망에 의하여 만들어지지 않고, 삶 역시 타자의 시선을 위해 영위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할 때이고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칠 때이다. 그러면 오늘날 개성없이 ‘떼 지어 몰려다니기’가 야기하는 각종 사회병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김근·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