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를 찍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계속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게 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마침내는 이동할 때도 니트 스웨터로 앞쪽만 가리고 걷게 되기도 한다.

가끔 현지인들과 마주쳤지만 뭐 어떠랴.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더욱 용감해졌다. 나중엔 놀란 얼굴의 사람들에게 씩 웃어주는 여유도 생겼다.

정작 나를 괴롭힌 것은 모기와 날벌레들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서너군데를 물렸고, 그 다음부터는 미리 준비한 바르는 모기약으로 온몸에 도배를 했다.

해뜨면 시작해 해지면 끝나는 스케줄이었지만, 스태프들은 장비를 정리하고 내일의 계획을 짜느라 밤늦게까지 자지 못했다. 도울 거리가 없는 나는 미안한 마음에 "피부관리라도 잘 하자"는 생각으로 하루는 와인, 하루는 우유를 잔뜩 사다가 욕조에 부어 놓고 몸을 담구었다.

청주나 와인에 더운 물을 타서 마사지를 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져 피부에도 좋다고 한다. 평소 와인을 좋아하는 나는 욕조 가득 부어진 와인을 보고 이게 웬 호사인가 싶기도 했다.

촬영중이던 30일, 나는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날 촬영장에 푸르고 가는 뱀 한마리를 봤다. 왠지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내가 뱀띠이니 길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스태프들이 여기저기서 수근거린다 싶더니 저녁에 다음 케이크와 생일상이 준비돼 있는 걸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 스태프들과 일했으니 결과가 나쁠리가 없겠다 싶었다.

오늘(1일), 드디어 그렇게 고생해 찍은 누드가 대중의 눈 앞에 서게 됐다. 과연 내 생각대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 뚜껑은 열어 봐야 알겠지만 최선을 다 한 만큼 후회도 없다.

아무튼 이제 지나간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연기자로서 더욱 열심히 활동할 때다. 잘 할 자신이 있냐고? 호랑이가 나온다는 정글에서도 태연하게 촬영을 했는데 이제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앞으로는 연기자로서도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하며,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끝>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