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대사관 신축 건물 등이 들어설 예정인 덕수궁터에 대한 지표조사(地表調査·땅 위로 드러난 유적 등만을 조사하는 것) 결과, 고종황제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門)터와 소로(小路)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은 “신축 건물 예정 부지는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얼굴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사진) 등을 모셨던 신성한 영역이므로 반드시 보존돼야 하기 때문에 시굴(試掘·정식 발굴 전에 시험적으로 하는 발굴)이나 발굴도 필요하지 않다”며 “앞으로 이 일대 부지를 매입해 옛 건물을 복원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단의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적 124호인 덕수궁 주변에서의 개발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장 정영화)와 사적분과(위원장 한영우) 심의 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대사관 신축 예정부지는 현재 사적지로는 지정돼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덕수궁에 속했던 곳으로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덕수궁으로부터 100m 이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개발에 앞서서 반드시 발굴을 해야 한다. 이 때 매장문화재분과 등의 심의를 거치게 되는데, 시굴이나 발굴이 불허(不許)되면 개발은 아예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중앙문화재연구원으로 구성된 연합조사단은 지난 6월부터 중구 정동 1-39번지 일대 덕수궁터 1만3200여평을 지표조사했다. 그 결과 미대사관저 서측 담장 외곽에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면서 사용했던 조그마한 길과 문(門)의 초석(礎石) 등이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초석은 가로 세로 40㎝ 정도이며, 남쪽으로 향한 문 앞에는 돌계단도 남아 있었다. 문은 너비가 190㎝ 정도이고, 문으로부터 러시아공사관까지의 거리는 150m 정도인 것으로 측정됐다.

또한 길이 1m, 두께 20㎝ 내외의 큰 돌로 쌓은 석축 등도 남아 있었으며, 일부 석재들은 부대사관저를 비롯한 부속 건물 주변의 화단시설이나 배수로, 혹은 정원의 석재로 방치돼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미대사관측이 신축하려는 건물은 지상 15층 신축 대사관과, 지상 8층 직원 숙소용 아파트 등이다. 이 곳은 원래 임금의 어진(御眞)을 모신 선원전(璿源殿)과 임금이 돌아간 뒤 왕의 혼백과 시신을 모셨던 흥덕전(興德殿) 등이 자리했던 덕수궁의 가장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경성일보사 등에 매각됐다가 광복 뒤 경기여고가 자리했다. 미대사관 신축 문제가 84년 한·미 양해각서 및 86년 서울시-미대사관 간 재산 교환을 통해 합의된 뒤, 경기여고가 80년대 후반 개포동으로 이전하면서 이 땅은 미국 소유로 바뀌었다. 당시 서울시는 옛 경기여고(중구 정동 1-8번지) 자리를, 미국 대사관은 을지로 1가에 있던 당시 미국 문화원과 종로구 송현동 49번지를 서로 주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