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문학소녀의 꿈이 싹트던 때였으리라.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헌책방 아저씨가 추천한 ‘소월시초’를 빌려 읽었다. 이튿날 아침 등굣길에 몇 구절이 생각났다. 특히 ‘산유화’ 중에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는 구절이 계절 순서와 다른 점이 떠올랐다.
마침 특별활동 시간에 문예반에 들어가 선생님께 질문했더니, “그야 소월에게 물어봐야지”라고 무안당하고는, ‘산’이라는 시에서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라는 구절은 더 질문할 수가 없었다. 우리 고향마을 산의 오리나무는 시에 나올 만한 좋은 나무가 아니었는데, 소월은 왜 산새가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고 했을까? 이 의문은 어머니의 나무노래에서 단박에 풀렸다.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 오후 하교 후 대문을 들어서니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또 그 촌티나는 옛날 노래였다. 아마 또 어린 동생이 ‘아이스케키’를 사달라고 떼쓰는 모양이다. 울며 떼쓰는 동생을 달래어 웃기는 사이, 아이스케키 소년이 멀리 가버리기를 바라시는 계산이었다.
“가자 가자 감나무/ 오자 오자 옻나무/ 달 속에는 계수나무/ 물가에는 물푸레나무/ 아들 낳아라 추자나무/ 무덤 앞에 가시나무/ 무당 손에 복숭아나무/오리길에 시무나무/ 십리절반 오리나무/ 가다 보니 가닥나무/ 오다 보니 오동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양반동네 상나무/ 마당 쓸어 싸리나무/ 따끔따끔 가시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칼에 찔려 피나무/방귀 뽕뽕 뽕나무/ 댓기이눔 대나무/ 참거라 참나무/….”
그렇다! 십리절반은 오리! 그래 오리나무다! 소월의 시 ‘산’의 오리나무는 거리 개념을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 시란 이렇게 쓰나 보다. 나는 시 공부를 이렇게 혼자서 한 셈이다. 어머니는 우리말의 명수이셨다. 대상의 나이와 생김새 행동 자세는 물론 장소와 사건, 시간과 때 등에 참으로 절묘하게 알맞는 비유와 상징어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잘도 만들어 말씀하셨다.
도시에 오래 살게 되자, 찬송가를 즐겨 흥얼거리셨지만 오륜가, 사친가, 사우가, 화전가 등 내방가사와 나무노래, 못된 시누이, 시동생 등의 속요를 흥얼거리시며 아궁이 앞에서나, 등잔을 당겨 호롱불 심지를 돋우고 바느질을 하시며 중얼거리시며 치마꼬리 당겨 눈물 훔치시던 젊은 아낙 엄마와 까망 단발머리 내 모습이 더 그립다.
어머니는 내 문학과 학문의 최초의 스승이셨다. 나무노래를 부르시는 단조로운 어머니 목소리가 새삼 그리운 이 가을, 고향집 툇마루까지 그리워 눈꼬리 젖는다.
(유안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