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준 산업부장

내년 여름,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에는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색(異色) 실험학교가 문을 열 예정이다. ‘일본의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는 숙(塾)’이라는 긴 이름의 이 학교는 도요타자동차 회장인 오쿠다 히로시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 제안하고, 뜻을 같이 하는 기업들이 발벗고 나서 지원했다. 독특한 커리큘럼도 그렇지만 전 세계에서 모셔 올 일류급 강사진 때문에 이 학교는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수상도 초빙 강사 중 한 명이라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기업이 학교를 세운다고 그 자체가 뉴스가 될 건 없다. 그동안에도 사내(社內) 대학이나 산학협동 학교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 언론과 국민들이 이 ‘기업발(發) 실험학교’에 주목하는 것은 문부성을 위시한 교육 전문가들이 주도해온 교육에 대한 팽배한 불신감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의 불만은 좀더 직설적이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비유되는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이 상당부분 교육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일본 문부성이 암기식 교육의 폐해를 개혁한다며 내건 구호는 ‘창조력과 생활력(生きる力) 넘치는 교육’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일본판 이해찬 세대’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장성(현 재무성) 재무관까지 지낸 사카키바라 히데키 게이오대 교수는 이달 초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초등학교에서 고교까지 문부성이 시시콜콜 간섭한다. 한마디로 관료통제가 교육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칭칭 옭아매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관료 출신마저도 두둔하긴커녕, 그렇게 혹평을 서슴지 않는 걸 보면 일본 교육이 점수를 잃어도 단단히 잃은 모양이다.

하지만 교육이 두들겨 맞기는 한국도 일본보다 나을 게 없다. 국내 주요기업 CEO들은 사석에서 공공연히 “대학에서 뽑아다 쓸 인재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일반 대졸인력은 물론이고 박사급 핵심 인력은 더 그렇다고 말한다. 누적된 교육의 하향 평준화에다 이공계 기피로 인한 기술인력의 공동화(空洞化) 현상까지 겹쳐 인적자원의 질(質)과 양(量)이 갈수록 떨어지니, 산업경쟁력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걱정이다.

물론 교육계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경제논리로만 재단하려는 사람들’이 참으로 답답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교육이 ‘최대 고객’의 하나인 산업계로부터 불신과 공격을 받는 현실만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80년대 말 경쟁력을 잃고 좌초한 미국경제를 날카롭게 해부해 회생의 돌파구를 제시한 것은 미국 MIT대학 연구팀(위원장 마이클 L·다토조스 교수)이 작성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라는 보고서였다. 2년간 미·일·유럽의 200여개 기업을 일일이 방문하고 CEO를 인터뷰해 미국경제가 가진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그 보고서가 상당 분량을 ‘교육과 대학’에 할애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경쟁력이란 산업경제력(기업)과 교육경쟁력(대학)의 합작품이다. 운동경기에 비유하면 양자가 다리를 묶고 함께 달리는 ‘이인삼각(二人三脚) 경주’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경제환경은 ‘경제’와 ‘교육’이 힘을 합쳐 한몸처럼 달려도 경쟁국들을 앞지르기 버거운 게 사실이다. 하물며 서로 불신하고 남의 탓만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그래서 요즘처럼 교육 당국과 경제부처가 교육정책, 경제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맞서는 모습을 보면 우울하기만 하다. 우리끼리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일본은 저만치 달아나고 중국은 무섭게 치받아 오기 때문이다.

기업과 대학, 경제계와 교육계는 지금 당장 머리를 맞대고 마주 앉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처방전, 이름하여 ‘메이드 인 코리아’ 보고서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 이준·산업부장 jun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