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하겠어. 빨리 빼” “야 이봐 내려가란 말이야” “나 회장이다. 말 들어. 거기 선두 이제 돌아오란 말이야.”

24일 오전 6시45분, 대연평도에서 북측으로 2㎞쯤 떨어진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 매일 밤 NLL을 넘어 연평도 근해 어족을 싹쓸이해가는 중국 어선들의 횡포를 보다 못한 연평 어민들이 60여척의 어선을 이끌고 이들을 향해 돌진했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을 막기 위해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는 연평도 어민들.(사진 왼쪽) 24일 새벽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가 도주하는 중국어선들.(사진 오른쪽) <a href=mailto:wjjoo@chosun.com><font color=#000000>/연평도=주완중기자</font><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놀란 해군 2함대 소속 군함 4~5척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와 어민들을 제지했지만, 선두의 어선 10여척은 기수를 돌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도망가던 중국 어선 2척은 한국 어선들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짙은 고동색의 무너질 듯 오래된 목선(木船)은 출렁이는 파도에 위·아래로 흔들리기만 할 뿐. 갑판 위, 남루한 차림의 중국 어민 3명은 기둥을 붙잡고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한국 군함의 긴박한 발포 위협에 이어 최율(47) 어민회장이 “너희들이 내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이 일은 실패야. 돌아와”라며 단호하게 무전기에 대고 말하자 NLL까지 넘을 듯 하던 어민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면서도 방향을 틀었다.

대연평·소연평도의 어선 60여척이 부두를 떠난 것은 이날 오전 6시20분쯤. 시속 26㎞ 속력으로 3~4분여를 달려가니 수평선 가까이 새카맣게 늘어선 중국 선단이 완벽하게 시야를 가로막았다. 어림잡아 600여척의 배가 NLL인근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런 중국어선들은 해가 지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동틀 때까지 NLL을 넘어 연평도를 완전히 둘러싼 채 불을 밝히고 조업을 벌여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지난 22일에는 유난히 가까이 내려와 대연평도를 ‘포위’한 중국 어선들의 환한 불빛 때문에 주민들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화3호 선주 박재원(40)씨는 “중국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나드는데 국방부는 왜 가만히 있는 거냐? 이게 완전히 무정부 상태 아니냐?”고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올들어 유난히 극성인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으로 ‘꽃게잡이’로 먹고사는 연평도 어민들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 어선은 들어갈 수 없는 연평주변어장 조업구역과 NLL사이 황금어장에 중국 어선들이 매일 밤 침범, 저인망으로 꽃게·광어·조개 등을 치어(稚魚)부터 깨끗이 긁어가고 있기 때문. 어민들에 따르면 조업구역을 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주민들 사이에는 “나라가 가만히 있으니 우리가 나서야 한다. 사제폭탄으로 중국 어선을 폭파시키자”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없이 터져나왔다.

이곳에 3대째 살고 있다는 정창권(50) 연평 우체국장은 “높은 데서 보면 어민들 말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섬 가까이에서 중국 어선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한 번 뚫렸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을 막기는 힘들 것 같고, 꽃게잡이로 연명하는 연평도는 조만간 ‘죽은 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옹진수협에 따르면 2003년 9월 한 달간 연평면 꽃게 어획량은 255t. 2002·2003년 같은 기간의 630·555t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상반기에 1508t을 잡아 ‘꽃게풍년’을 일궜던 어민들 표정은 3개월 사이에 절망감으로 가득하다.

하루 전 연평선주협회는 인천해양경찰서·해병대 연평부대·해군 2함대 등 앞으로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냈다. “이 어장과 내가 사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금일도 중국 어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한다면 22시를 기해 중국 어선과 맞서 싸우러 바다로 나갈 것이니 이 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24일의 해상시위는 이런 결의의 결과였다.

불법 조업을 하다가 한국 어선들에 포위당한 중국어선. 가운데 검은 어선이 중국어선이다.<a href=mailto:wjjoo@chosun.com><font color=#000000>/연평도=주완중기자</font><

올해 10월 24일까지 인천해양경찰서측이 불법조업으로 나포한 중국어선은 97척. 2000년 29척, 2001년 39척, 2002년 25척에서 급증했다. 중국 어선들은 올들어 어족의 흐름에 따라 NLL을 타고 백령·대청도 부근에서 대규모로 조업을 하다 약 보름 전부터 연평도 근해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인천해경 한 관계자는 “급격한 산업화를 겪고 있는 중국이 연안의 바다가 오염되면서 어족자원이 고갈됐을 것”이라며 “대체어장을 찾다보니 자꾸 한반도쪽으로 흘러오고 있는데 결국 이런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