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성(新女性)’의 등장은 한국 근대 여성사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하지만 신여성의 정체성과 범주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1920년대에 태어난 이 단어가 학문적 정의도 없이 나이 80을 훌쩍 넘겼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일제 시기 신여성을 재조명하는 것은 한국의 근대적 여성성, 그리고 한국 여성해방 논리의 계보를 탐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 여성상’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신여성에 대한 연구 보고서다. 여성에게 근대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진지한 물음과 답이 담겨 있다.

실체의 그림자가 돼주는 말로부터 신여성의 모습을 짐작할 수는 있다. 신여성의 대표적 인물인 김원주는 “신여성이 되려면 나부터 알아야 하고, 조선을 알아야 하고, 결혼을 직업화하지 말고, 동등한 경제권을 갖도록 애쓰고, 경제 상태를 면밀히 파악해 자기 생활을 타개하고, 검소한 몸가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여성들은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무용가 최승희는 서양 무용을 우리 전통문화에 맞게 고쳐 해외에 소개했고, 서양화가 나혜석은 1921년 조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서양 음악을 보급한 김애식 김영의 윤심덕 등에서부터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 김활란과 차미리사 등의 교사들, 김원주 최은희 등 기자들, 이영실 허영숙 등 의사들에 이르기까지 신여성들은 동시대 여성들의 결혼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00년대 초 조선과 일본에서 활동한 대표적 신여성 나혜석과 히라쓰카 라이초우의 생애를 비교해 보면,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여 실천하려는 여성들의 삶이 사회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수용되거나 왜곡되는지 읽을 수 있다. 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큰 차이는 나혜석이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과정에서 받은 사회적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불행하게 객사한 반면 히라쓰카는 당시에 불법이던 동거를 하고도 여성권익 신장 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신여성들은 봉건적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나혜석 등 초기 신여성들은 그러나 사상을 개인적으로만 펼쳤을 뿐 조직적 기반 위에 서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지지할 만큼 교육받은 여성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사, 일본 근대 여성사, 문화인류학, 한국 문학 등을 연구하는 한·일 양국의 학자들이 쓴 8편의 논문이 함께 묶여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각도로 양국 신여성들의 삶과 상황, 차이점과 영향 등을 분석했다. 여성사를 비교·연구하는 데 징검다리가 돼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