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성공회가 동성애 주교의 서품을 놓고 분열위기에 놓였다. 세계 성공회의 수장인 로원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지난 15~17일 영국 런던 자신의 공관에서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관구장 38명을 긴급소집, 회의를 열고 동성애 주교의 서품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과는 “동성애 성직자 서품에 대해 반대한다”는 성명으로 발표됐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국의 정철범 대주교는 “일부 동정적 의견이 없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관구장들이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혔고 워낙 완강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 세계 관구장들의 긴급회의와 성명까지 불러온 장본인은 미국 뉴햄프셔 교구의 로빈슨 주교. 그는 지난 8월 주교로 선출되기 전 이미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고, 그럼에도 교구 내의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그를 주교로 선출했다. 이 사건은 즉각 미국 성공회 내의 진보·보수 논쟁을 촉발시켰고, 전 세계 성공회의 일체감까지 흔들리게 됐다. 이런 분열위기를 막기 위해 캔터베리 대주교의 긴급회의 소집이 있었던 것. 그러나 여성에 사제직 문호 개방 등 진보적 성격을 보여온 성공회도 동성애 주교 경우만큼은 용납하지 못했다.
정 대주교는 “회의에서 당사자인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남아공 등 백인 신자가 많은 지역의 관구장들이 미국 입장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은 “동성애 사실을 감추지 않고 밝힌 상태에서 주교로 선출됐기 때문에 교회법상 적법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캐나다는 “국내법상 동성애자의 결혼도 허용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남아공의 경우는 “지금은 기아(飢餓)나 AIDS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의 관구장들을 중심으로 “미국 성공회가 동성애 주교의 서품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분리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완강한 입장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이는 또한 지난 98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성공회주교회의에서 밝힌 동성애 반대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공회는 일반 신자의 경우엔 동성애자 역시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관구장 회의 성명에서 보듯이 주교의 경우는 아직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
문제는 성공회가 군대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관구별, 교구별로 매우 자율적이란 점. 당장 이번 관구장 긴급회의의 성명도 구속력이 없다.
성공회는 20여년 전 여성에게 성직자의 문호를 개방할 당시 일부가 이탈해 나간 아픔이 있다. 그러나 성공회는 16세기 가톨릭과 분리된 이후 이처럼 격렬한 분열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 현재로서는 로빈슨 주교가 스스로 주교 취임을 포기하는 방법 외에는 성공회의 분열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정 대주교는 “일단 전 세계 성공회가 11월 2일의 서품식 강행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며 “만약 본인이 의사를 철회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 이전에 미국 성공회부터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