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두렵다?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약혼을 했다가 파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약혼을 한 예비 신부는 ‘아무래도 결혼하기에는 너무 어린 것 같다’고 망설이고, 예비 신랑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주저하다가 파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예비부부의 20%가 결혼식 앞두고 파혼
독신남녀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웹사이트인 ‘매치닷컴’(match.com)이 지난 8월 미국의 독신 성인 5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파혼했다는 응답자는 약 20%, 그리고 주변에 그러한 사례가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39%에 달했다.
미국에서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 백화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 목록을 만들어두면, 결혼식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그 목록에서 한두 가지를 골라 값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한다. 블루밍데일 백화점은 지난 3년 동안 결혼선물 목록을 보류해달라고 신청한 예비부부의 비율이 15%에 달했다고 밝혔다.
파혼에 따른 감정적·실질적 괴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도 등장했다. 결혼식을 2주 앞두고 파혼한 경험이 있는 언론인 레이철 사피어(Safier)가 쓴 ‘저기 신부가 간다’는 책은 ‘결심하고, 취소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파혼 후 친구와 가족들을 설득하는 법, 결혼 반지를 되돌려주는 법까지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 책에는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자 ‘이 사람이 과연 내가 찾던 그 사람인가’라는 회의에 사로잡힌 예비신부가 결혼을 취소한 사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조금도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아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예비신부의 사례가 등장한다.
사피어는 “미국에서 약혼했던 커플의 20%가 파혼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연 5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적절한 순간, 적절한 상대와 결혼의 질긴 인연을 맺는 것은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 파혼은 어렵지만, 현명한 결단?
이렇게 ‘도망치는 신부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임은 스트레스와 비용이 엄청난 결혼식, 그리고 이혼에 대한 공포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20~30대 여성들이 미국에서 가장 이혼율이 높았던 세대의 자녀들이라는 점에서 이유를 찾는다.
이들은 ‘깨진 가정’보다는 ‘깨진 약혼’이 낫다고 생각한다. 거의 결혼할 뻔했다가 ‘달아난 신부’들은, 파혼이 어려운 일이지만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현명하고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임은 또 약혼기간이 늘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져 파혼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한 결혼잡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99년 11개월이었던 평균 약혼기간은 2002년 16개월로 늘어섰다.
약혼 커플 중 60%는 결혼 전에 동거를 시작하는데, 이 동거기간이 결혼과 다름 없어지면서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 과정도 파혼의 원인이 된다.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면 돈에 대한 관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 결혼 전에 미리 알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점점 더 유연해지는 결혼
이혼에 대한 두려움은 결혼을 더 신중하게 고려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미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결혼 공식’은 점점 사라져간다.
혼인신고와 결혼식, 피로연, 신혼여행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후 같이 산다는 ‘차례’를 중시하기보다는 각자 형편에 맞게 유연하게 결혼의 형식을 택한다.
워싱턴DC 시청에 근무하는 사라 에반스(가명·33)와 전직 언론인인 대니 타운젠드(가명·34)는 6개월 전 워싱턴시 동북부에 140년 된 빅토리아풍의 예쁜 집을 샀다. 2년째 같이 살고 있고 미래 설계도 함께 하는 두 사람이지만 ‘법률혼’ 부부는 아니다. 결혼식은 일년 후에 할 예정이고 서로 남편과 아내라고 소개하지도 않지만, 주변에서는 이들이 당연히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워싱턴의 한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트레이시 워드(가명·39)는 혼인신고만 하고 남편과 같이 사는 경우다. 두 사람 다 너무 바빠서 결혼식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이미 동성 커플도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뉴욕타임스는 몇 달 전부터 동성 커플의 ‘결혼식’ 소식을 소개하고 있으니, 미국에서 ‘결혼’과 ‘부부’는 이미 예전의 그 의미가 아니다.
‘미국의 커플들’이라는 책의 저자인 사회학자 페퍼 슈워츠(Schwartz)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자기 방식대로 결혼하는 마이웨이(my way)형 결혼으로의 이동”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강인선특파원 ins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