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논설주간

재신임 정국이 제자리걸음이다. 재신임이란 대통령 보고 더 하라고 할 거냐, 아니면 그만 내려오라고 할 거냐의 문제다.

이 중대문제를 놓고 당사자인 대통령 말이 하루하루 달라지고, 이에 따라 각당의 대응도 오락가락이다. 이 문제로 여태껏 여·야가 얼굴 한번 맞댄 적이 없다.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을지부터가 오리무중인 것이다.

지난 10일 있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은 그때,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상은 어수선해지고, 백성들 마음은 뒤숭숭하고, 나라는 망신살만 뻗친 셈이다. 이게 대통령 중대선언 열흘간의 결산이다.

혼란의 출발은 대통령이 현 시국의 문제를 헛짚었거나, 헛짚은 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일부러 헛짚은 체했다면, 도덕성 시비가 걸릴 만한 교묘한 정치수법이기도 하다. 첫날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게 된 배경으로 누적된 국민불신과 20년 측근 최도술씨의 비리를 들었다.

이 말에 국민들은 한편으론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적된 불신으로 지지율이 바닥이란 건 맞다. 그러나 최씨의 비리가 대통령과 어떻게 닿아 있기에 자리를 걸겠다는 것인가. 이건 당연스런 의문이다.

다음날 상황은 보다 명료해졌다. 대통령은 국정혼란의 원인으로 대통령을 흔드는 야당과 일부 신문을 지목하고, 이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재신임의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누가 들어도 이게 대통령의 본심이란 것은 확실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중대결심은 2중으로 포장된 것이다. 겉은 국민불신과 측근비리에 대한 책임감으로, 속은 야당과 일부 신문에 대한 불만으로 싸인 셈이다. 대통령은 재신임 카드 하나로 이걸 단번에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중대결심의 이같은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재신임 정국을 어떻게 보고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현재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 일부 조사에서는 10%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취임식 때는 92.2%까지 기록했다.

대선 투표율이 48.9%였던 것을 떠올리면, 선거에서 그를 찍었든 안찍었든 취임식을 바라보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우리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며 그의 성공을 빌었다는 이야기다. 그게 7개월 만에 70%나 떨어졌다. 매달 10%씩 꾸준히 주저앉은 것이다.

바닥을 기는 지금의 지지율이 측근비리 같은 무슨 돌발사(突發事) 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대통령의 말과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것의 반영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총체적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현 상황의 핵심은 대통령과 국민 간의 불화(不和)다.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단계적으로 또 일관되게 거둬들임으로써 자신들의 불만을 표시하고, 대통령의 변화를 거듭 촉구해온 셈이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정운영 방식 가운데 당장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즉각 바로잡고,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는 점진적 개선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 총선을 통해 결과에 대한 심판을 겸허한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시 말해 대통령 자신이 옳고 국민이 틀렸다고 확신하고, 그 생각을 바꾸기가 싫다면, 물러나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지도자의 도리다.

그러나 지금 노 대통령의 선택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먼저 현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과 국민 간의 불화’에서 ‘대통령과 야당·일부 신문과의 불화’인 것처럼 바꿔놓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왔던 국민들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되물어온 것이다.

‘대통령이 물러나서 빚어질 더 큰 혼란’과 ‘불만스런 오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주문이다. 물론 마음 약한 국민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도 미리 내다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정치적 투기(投機)이고, 반대했던 사람마저 ‘우리 대통령’으로 맞아들였던 국민에 대한 예의에도 벗어난 처사다.

이 정치적 투기가 얼핏 성공한 듯 보였던 것은 ‘밑져야 본전’이란 듯이 ‘빠를수록 좋다’고 달려들었던 야당의 반응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투기’와 야당의 ‘밑져야 본전의식’ 사이에 끼어 잘해도 본전을 건지지 못하게 된 것이 지금 국민의 딱한 처지다.

(강천석·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