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식을 취하면서 가을단풍을 즐기고자 남한산성에 올랐다. 가을볕에 짙게 물들어가는 남한산성 행궁터 위에 반석(磐石)이라 쓰인 바위 하나가 오랜 풍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반석같이 종묘·사직을 지키고자 하는 염원에서 새긴 것일까?
남한산성은 1626년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조된 산성이다. 당시 조정은 오랑캐인 만주족(청·淸)의 침입에 대비하여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 간에 국론이 분열된 상태였다. 인조 정권은 서인들의 지지와 친명반청(親明反淸)의 외교노선을 선택한 결과 청의 침입을 자초하게 됐다. 당시 조정의 실리론자들은 외교적 타협을 통해 국가를 보위해야 할 현실을 고민해야 했고, 삼학사와 같은 소장학자들은 명분론에 입각하여 척화(斥和)를 관철시키려 하였다.
그때를 생각하니 요즈음 국내외 상황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라크 파병 결정과 대통령 신임문제를 둘러싼 정파간의 대립, 찬반 양론의 국론분열, 북핵문제 해결 등등, 모두 다 ‘솔로몬의 지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은 여론을 수렴하고 국가이익과 외교관계를 고려해 균형 있는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을 보여줘야 할 텐데….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고 신중한 언행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 튼튼한 국가경영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 나만의 바람일까? 바위에 새긴 ‘반석’이란 글씨가 유난히 커 보인 하루였다.
(조병로·경기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