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한국색채학회 회장·세종대 교수

각종 게이트에 어김없이 연루되고 시급한 민생현안 처리에는 철저히 무관심하며, 멱살잡이와 머리채 잡기로 편가르기에나 전념하는 정치권에 대해서 대다수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냉소적이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평생 개과천선할 리 없는 이런 3류 정치인들의 색깔 논쟁으로 장안이 시끌하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색깔이란 무엇이며, ‘색’은 무엇이고 ‘깔’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색이란 인간의 안구(眼球)에 지각되는 빛의 물리적 수정결과이기 때문에 ‘빛’과 ‘색’을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빛이 없으면 색을 인지할 수 없다는 뜻이 되며, 구어체에서는 색깔과 빛깔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면 ‘깔’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흔히 ‘빛깔 좋다’ ‘색깔 좋다’ ‘성깔 있다’ 라고 말한다. 즉, 어떠한 사물이나 집단의 성격(Character)과 개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색의 수는 1000만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요즘 정치인들이 주로 문제 삼는 색은 붉은색(赤色)이다. 원래 붉은색은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최고로 품격있는 색으로 알려지고 있는 색이다. 중국에서는 오방색(五方色) 중에 하나로서 만물의 무성함과 부를 상징하며 방위(方位)는 남쪽을 뜻하며 음양오행의 양(陽)에 해당하고 악귀를 쫓거나 혼례시 축복의 의미로서 사용하고 있다.

서양에서도 왕족이나 교황의 옷이 붉은색이며 국가원수가 특정 국가를 방문할 때 붉은 카펫을 깔아 경의를 표하는 것도 그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고위직 공무원에게만 사용하도록 하고 공기(工技), 농민, 서민 등 낮은 계급에는 붉은색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였다.

권위의 상징이고 부귀영화와 축복의 색이며 젊은 신세대 다수가 좋아하는 붉은색을 정치인들은 언제부터 혐오색으로 구분했고, 또 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6·25전쟁 때 공산당이 구소련의 기(旗)와 중국기(五星紅旗) 등 붉은 기를 높이 쳐들고 우리나라를 침략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원래 붉은색은 연상(聯想)의 언어로서 권위, 정열, 위험, 피, 혁명의 의미가 있다.

그후 요사이 남남(南南) 갈등의 와중에서 ‘색깔논쟁’이 격화되면서 수구·보수(한영사전에는 동일어로 표기되어있다·conservatism) 세력은 붉은 바탕의 플래카드만 보아도 6·25 참상을 기억하고 몸서리를 치며 진보세력을 무조건 붉은색으로 몰아붙인다. 보수세력은 고고한 인품과 인격, 깨끗함,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청산, 독야청청, 청백리(淸白吏), 평화를 뜻하는 청색을 자신들의 색깔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보세력은 냉전이 종식된 판에 ‘붉게 물든 좌파’라고 하며 일방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자유주의 원칙마저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수구, 보수세력들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없는 색깔을 덧칠해가면서 ‘친북 좌파’라고 규정짓는 것은 그들 중심적 주장이라며 역(逆)색깔론으로 역습하고 있다.

하지만 본디 동물이나 곤충, 식물 등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주변과 가장 아름답게 조화로운 배색(配色)이 되도록 태초부터 노력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생명체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본능을 거부한 채 주변과 아름답게 조화하려는 배색 감각을 키우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색깔 구분을 하며 편가르기를 하기보다는 시대적, 환경적 상황 변화와는 무관하게 균형감각을 갖고 국민을 위한 정책대결에 몰두하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니던가. 한국 정치인들의 역량으로 청색과 적색의 혼색으로 해맑고 투명한 새로운 혼합색(混合色)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김지철·한국색채학회 회장·세종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