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요즘처럼 뜨거웠던 때는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정연주 사장이 취임한 이래 KBS는 나름대로 의욕에 찬 혁신을 펼쳐왔다. 그 핵심은 1채널은 개혁적 프로그램의 신설에 의한 공영성 강화이고, 2채널은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지로 ‘젊은 채널’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KBS1은 개혁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계몽적·계도적 성향이 강해 ‘정치를 하는 공영방송’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KBS2는 오락프로그램의 편성이 과다하고 내용의 선정성 또한 심각해 그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쪽으로는 정치성을 노골화하고, 다른 쪽으로는 상업성의 극대화로 나타나는 채널 특성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개혁적 프로그램의 정치성 논란은 보는 시각에 따라 찬반 입장이 분분한 만큼 일단 차치해 두더라도, 상업성 비판은 KBS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며 철저한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KBS2가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슬로건은 ‘건전한 가정 문화 채널’이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시청자 선택의 폭을 확대한다고 한다. 상업방송의 선정적 프로그램으로부터 국민정서를 보호하는 정신적 그린벨트를 구축한다는 편성원칙 아래 드라마와 연예·오락프로그램을 방송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9월 초 분석자료를 보면 KBS2의 장르별 편성은 건전한 가정문화 채널은 물론 젊은 채널과도 거리가 멀다. 예컨대, 두 개의 TV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BBC나 NHK와 비교해도 KBS2의 드라마 편성비율은 BBC1의 17.9%, NHK1의 12.4%를 훨씬 상회하는 26.3%로 으뜸이다. 이 수치는 MBC의 18.3%, SBS의 15.6%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가히 드라마 왕국을 이루고 있다. 드라마를 선도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임무는 아닐 것이다. BBC나 NHK 모두 기간종합편성채널인 1채널에서 드라마를 방송하고, 2채널은 예술교양 또는 교육중심의 준전문채널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KBS의 채널편성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버라이어티 쇼의 경우도 BBC와 NHK의 경우 개별 채널당 고작 2%에서 4%수준인 데 반해 KBS2는 22.1%를 보이고 있다. 이 수치는 MBC의 20.5%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7~8월 버라이어티 쇼의 방송시간 10분당 가학적 장면과 선정적 장면의 발생빈도는 KBS2가 각각 1.81회와 1.18회로 MBC(1.41회, 0.4회)와 SBS(1.4회, 0.81회)보다 많았다. 이러한 내용의 연예·오락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편성하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신적 그린벨트를 구축하는 것인가?
게다가 KBS2의 청소년 소구대상 프로그램 편성은 공식적으로 없다는 것이 진흥원의 분석이고, 어린이 소구대상프로그램도 BBC2의 22.6%, NHK2의 15.4%에 비해 턱없이 낮은 7.5%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시청자 선택의 폭을 확대하겠다는 방침과 어린이·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KBS1이 이른바 개혁적 프로그램을 아무리 강화한다고 할지라도 KBS2가 여전히 드라마 천국이고, 연예인 중심의 연예·오락프로그램에 매달린다면 KBS의 상업성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NHK는 민영방송과의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공영방송 본연의 다양한 장르의 고품격 프로그램에 충실함으로써 그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있다.
BBC는 방송사의 상업적 활동은 넓혀가지만 프로그램의 공익성은 철저히 준수하면서 공익적 프로그램의 질 개선을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KBS는 두 외국 공영방송사를 거울삼아 공영방송으로 지향해야 할 진정한 프로그램 개혁은 무엇인지 다시금 정립해보길 새삼 기대해본다.
(박천일·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