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사막화한 댄스와 립싱크 광풍이 사라지고 있다. ‘무늬만 가수’들이 외면 당하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하나둘씩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 가수 BMK(빅 마마 킹의 약자·본명 김현정)의 등장은 이런 대세에 못을 박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재즈 가수 출신으로 첫 음반을 낸 BMK와 힙합 듀오 리쌍이 만났다. 이들은 “오랫동안 ‘거짓 음악’이 판쳤지만, 요즘 들어 실력 있는 가수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길, BMK, 개리.

그녀는 최근 첫 음반 ‘마이 퍼스트 앨범(My First Album)’을 내놓고 대중음악계에 본격 도전장을 냈다. TV에서 환영받기 어려운 외모의 그녀가 음반을 낸 것을 두고 대중음악계는 “시장과 소비자가 변한다는 증거”라며 술렁거렸다. 역시 TV에서 외면 받아온 힙합듀오 ‘리쌍’이 엊그제 BMK를 만나 대중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BMK는 리쌍 2집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를 함께 부르기도 했는데, 그동안 많은 팬들이 “도대체 BMK가 누구냐”는 의문을 가져온 게 사실이다. 우선 리쌍은 26세 동갑내기인 ‘개리’와 ‘길’로 이뤄진 듀오다.

제작자들도 '실력' 따져
라이브가수 위주로 찾아

“처음 누나(BMK)의 노래를 들었을 때 스피커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때 노래가 로버타 플랙의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이었는데, 듣는 순간 ‘같이 음악하자’고 했죠.”(길)

“작년 10월엔가 방송에 나갔는데, 리허설 때 누나 노래를 듣고 다들 기립박수를 쳤어요. 우리도 깜짝 놀랐죠. 그러더니 가수들이 와서 누나더러 ‘선생님’이라며 인사를 했어요.”(개리)

어려서부터 성악을 공부한 BMK는 서울재즈아카데미를 1기로 졸업하고 수원여대·백제예대 등에서 보컬 강의를 해왔다. 그녀로부터 노래를 배운 가수는 이정, 박민혜(빅마마), 성훈(브라운아이드소울) 등이 있다.

“솔직히 방송국에서 박수를 받으리라곤 생각 못했죠. 제가 아는 대중음악은 ‘비주얼’ 위주였거든요. 그 편견을 깬 사건이었어요.”(BMK)

“예전엔 그랬어요. 우리가 7인조 힙합그룹 ‘허니패밀리’ 시절에 TV에 나갔는데, 마이크를 2개만 주더라고요. 가수가 7명인데, 그냥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길)

“TV 음악프로그램을 보면 답답해요. 자기가 쓴 곡도 아니고, 음정·박자 다 틀리고… 자기 느낌을 노래로 표현하지 못하는데 무슨 가수인가요.”(개리)

“많이 바뀌고 있어요. 요즘은 라이브가 아니면 TV 무대에도 서기 어려워요. 제작자들도 ‘노래 잘하는 사람’을 찾으러 다니고 있죠.”(BMK)

BMK는 올 초 돌풍을 몰고 온 여성 보컬그룹 ‘빅마마’ 이후 대중음악계 최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노래들은 흑인가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음색을 한껏 드러내준다. 블루스와 소울, 가스펠의 느낌까지 두루 소화하는 그녀는 첫 곡 ‘헤이 헤이!’에서부터 귀를 번쩍 뜨이게 한다. 타이틀곡 ‘떠나버려’는 발 장단이 절로 맞춰지는 소울풍 댄스곡….

BMK 음색의 흡인력은 ‘미스터 나이트’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샘 리의 어쿠스틱 기타와 김진표의 랩이 가미된 이 노래에서 그녀는 가녀린 음성으로 시작해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묵직한 목소리로 솜씨를 발휘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재즈 가수로 활동했던 음색이 모든 곡에 담겨있다. 볼륨을 키워 들으면 개리 말대로 ‘어느 순간 소름 끼치는’ 목소리다.

“우리가 데뷔한 지 벌써 7년째예요. 큰 인기를 얻거나 음반이 ‘대박’나진 않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어요. 이제 대중들이 ‘좋은 음악’을 알아봐주는 것 같아서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길)

“노래가 안 되는 가수는 창피해서 무대를 내려가도록 해야죠. BMK 음반이 그런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개리)

BMK는 “리쌍 덕분에 대중음악에 대한 편견도 깨고 내 갈 길도 찾았다”며 “재즈 가수의 길을 고집했다면 언더그라운드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찍이 영국밴드 버글스가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고 외쳤다면, 이제 라디오 스타의 반격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