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4일 새벽 홍익대 미대에 다니는 한모(여·23)씨는 추석을 쇤 후 친구와 함께 새벽 기차편으로 서울역에 도착했다. 함께 택시를 타고 마포구 동교동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 집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집은 반대 방향이었다. 이날 새벽 4시 55분쯤 집 앞에서 한씨는 괴한이 뒤에서 내려친 둔기에 맞아 사흘 뒤 사망했다. 속칭 ‘퍽치기’ 라는 노상강도 수법이었다.

수사에 나선 마포경찰서는 인근 경찰서에도 비슷한 사건이 지난 7월 말부터 6건이 접수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범행 장소는 모두 동교동과 연희동 인근. 범행 당시 비가 내렸다. 피해자는 대부분 새벽에 혼자 귀가하던 젊은 여성이었고, 모두 머리 부분을 둔기로 맞아 중상을 입었다. 범인은 훔친 금품 중 현금만 빼내갔을 뿐 추적이 가능한 신용카드와 수표는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다.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정황을 통한 추리와 ‘비오는 날’에 역점을 둔 무기한 잠복 근무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선 ‘비내리는 밤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라는 점에서는 영화 ‘살인의 추억’, ‘퍽치기’라는 점에서는 영화 ‘와일드카드’의 내용과 닮아 있었다. 경찰은 ‘경험을 통한 직관’으로 범인이 ‘혼자 사는 젊은 남자’일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경찰은 낮에는 범행현장 주변 30여개 비디오 대여점을 돌아다니며 두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낮시간대에 빌린 20·30대 남자를 추려냈다. 그 가운데 공인중개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혼자 사는 남자 300여명을 상대로 탐문조사를 벌였다. 또 중국집에 음식을 ‘한 그릇’만 시킨 남자 200여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밤 0시~오전 6시에는 잠복 근무를 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강력계 형사 전체인 30명과 형사계 당직 1개반 등 35명이 동원됐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20여명이 잠복 근무를 했다.

그러는 동안 '미제사건'의 단골손님인 '괴담(怪談)'도 돌았다. 범인은 홍익대 미대에 다니는 여학생만 노린다는 내용으로 이 때문에 홍익대 미대생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경찰이 범인 검거를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사이 지난 1일에도 30대 여성이 또 괴한에게 퍽치기를 당해 금품을 빼앗기고 중상을 입었다.
마침내 지난 13일 새벽. 잠복 중이던 경찰은 마포구 동교동 한 주택가에서 30대 여성을 쫓아가다 쇠방망이를 꺼내려는 김모(32)씨를 목격했다. 현장에서 그를 검거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에서 김씨는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 사채 등 2억5000만원의 빚을 지게 돼 가족과도 떨어져 혼자 산다”며 “지난 4월 봉제업체에 취직해 월 200만원의 수입이 있었지만 새벽에 불안하고 초조해서 잠이 안 오면 빚 갚을 생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비오는 날 새벽에는 인적이 드물어 범행시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말부터 9차례의 ‘퍽치기’를 통해 빼앗은 돈은 불과 현금 69만원. 서울 마포경찰서는 14일 귀갓길 여성들을 흉기로 때리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