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이사기자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로 갈 수밖에 없다. 그 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길밖에 도리가 없어서 그렇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대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언젠가 어디선가는 한번쯤 승부를 결정지을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 대결론 같은 것이 애당초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숙명론은 ‘노무현 정치’의 등장에서부터 시작됐다. 그의 당선은 오랜 군부통치,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민주화, 그리고 그것을 통튼 한국정치의 견고한 낙후성과 뿌리 깊은 기득권에의 안주를 깨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관념과 보편적 개념을 깨는 한국정치의 퓨전화(化)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끄는 ‘노무현 정치’는 일견 성공하는 듯했다. 정치의 메커니즘을 잘 아는 경험과 지혜를 하수인(下手人)으로 썼더라면 그들이 말하는 ‘물갈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만했다. 많은 정책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그래서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요소와 세력들이 이완하기 시작했다. 백만의 군대를 끌고 입성(入城)했던 그는 불과 6개월 만에 이제 십만의 장병, 그것도 과거 적군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무기력한 386’을 거느리며 변방으로 내몰리게 됐다.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재신임의 승부수를 던진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이며 숙명적이다. 그의 선택은 물러나느냐, 아니면 한번 더 게임을 벌이느냐의 두 가지뿐이다. 그는 후자를 택했고, 그래서 재신임 국민투표는 불가피하게 됐다.

사람들은 헌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 위헌적 처사라거나, 참모들의 비리를 호도하려는 연막전술이라거나, 실업이 늘어나고 투자가 급감하는 등 불황이 지속되는데 수백억원이 드는 선거를 할 절박한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는 등의 얘기를 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재신임이 되면 노 정권은 ‘칼자루’를 신임받은 듯이 기고만장해서 더욱 비판과 반대를 탄압하면서 일방통행을 강행해 나라를 완전히 두 동강 낼 것을 크게 우려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반대로 불신임되는 경우 국정의 표류와 투표 때까지 국정의 공백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결과로 외국의 신뢰와 투자가 더욱 떨어지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한다. 그래서 나라와 국민을 볼모로 삼아 도박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노 대통령의 선택이다.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을 때부터 잉태된 결과다. 게다가 그는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한 말을 당장 뒤집을 형편에 있지도 않다. 특히 재신임의 ‘여론’이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그와 그의 세력에게 후퇴와 대타협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재신임 국민투표를 기정사실화하고, 그것을 향해 찬성과 반대의 진영을 정비하되 합법적 방법으로 합리적인 논리와 쟁점으로 민주시민답게 싸우는 것이다. 더 이상 꼼수를 써서는 안 된다. 질문 문안(文案) 가지고 장난해서도 안 된다. 이제 와서 딴 재주 피우고 딴소리 해봐야 국력낭비에 시간낭비를 더 얹는 결과가 될 뿐이다.

이것 역시 어쩌면 우리 정치가 겪어야 할 숙명적인 과정일지 모른다. 이렇게 4년을 끌 바에야, 나라가 완전히 편을 갈라 불구대천의 원수로 허구한 날 욕하고 싸우며 4년을 더 허송할 바에야 한번쯤 중간지점에서 일대 회전(會戰)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생각을 고쳐먹고 거기에 일단 몰두하는 것이다.

다만 결과는 신임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누구도 국민투표의 결과에 심정적으로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기거나 지거나 노무현 정치는 결국 ‘과속’하거나 ‘엥꼬’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것까지 우리 정치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김대중·이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