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승려 담징의 벽화로 잘 알려진 일본 법륭사(法隆寺)를 둘러보고 있는 작가 최인호. 그는 철저한 답사와 고증을 통해 일본의 의도적 역사 단절을 폭로한다.

“1500년 풍상에 거칠어져 있긴 해도 지금까지의 통념대로 광개토대왕 비문(碑文) 속 문제의 자구(字句)는 ‘내도해파(來渡海波)’임에 틀림없다고 중국인 학자가 단정했다.”

내도해파? ‘왜(倭)가 391년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쳐서 신하로 만들었다’는, 일본의 단언적인 광개토대왕릉비(중국 지린성 퉁거우 소재) 해석을 전한 1984년 7월 28일 아사히(朝日) 신문 1면 머리기사였다.

그날 일본 오사카에서 이 기사를 접한 저자(58)는 “한여름에 오한을 느꼈고 오기를 악물었다”고 했다. 비문에 새겨진 1775개 글자 중 그들이 몇 개의 글자에만 유독 집착해 전체를 곡해하는 이유는 자명하지 않은가! 우리가 고작 옛 왕국의 공적비로 여기는 것을, 저들은 일조동조론(日朝同祖論·한국과 일본은 한 민족이란 학설)의 이론적 무기로 삼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특히 우리가 한낱 바람으로 여겼던 백제의 흔적을, 그 웅혼한 예술미의 잔재를 일본 곳곳에서 느끼며 사명감을 무장한다.

1985년 조선일보에 연재해 이듬해 초판을 낸 뒤 100쇄를 넘긴 역사 소설이 개정증보판으로 단장됐다. 작가가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언젠가 고해성사할 자신의 출생 비밀”로 자신했듯, 치열한 자료수집·답사·고증과 열정으로 일본의 역사 조작과 백제로부터 왜·일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단절됐는지를 추적한다.

<a href=http://bookshop.chosun.com/books/book_detail.asp?goods_id=0100004906077 target=_blank><img src=http://www.chosun.com/img/200305/section/books/bookcart.gif border=0><

일본 텐리(天理) 이소노카미 신궁에서 발견된 영험한 칼 ‘칠지도(七支刀)’ 역시 역사 복원을 위해 애쓰는 저자의 절실한 구출 대상이다. 칠지도가 백제의 하사품이냐 헌상품(獻上品)이냐 여부는 한·일 학자 간 팽팽한 논쟁거리였고, 일본은 이 신검(神劍)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야마토 왜가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주장)의 물증으로 삼아 왔다. 저자는 일본의 음모에 의해 지워진 칠지도의 상감(象嵌) 기법 명문(銘文)에서, 실제 제작연대와 당대 강국 백제의 자취를 되살려 낸다.

저자는 일본이 천 년을 품어 온 한반도를 향한 원한의 뿌리를 ‘일본서기’에서 캐낸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백제 유민들이 바다 건너 건설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왜’를 일본서기가 지워 버렸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소외·도회병(都會病)에서 둔중한 역사의 영역으로 관심을 넓힌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렸던 것”이라고 저자는 술회한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를 되찾기 위해 역사는 ‘제대로’ 쓰여야 하며,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에다 숨겨진 제4의 제국인 ‘왜’를 더해 ‘사국시대’를 논해야 한다고 속도감 있는 어조로 강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