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국민들에게 대통령 신임을 묻는 성격을 띠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총선에서 신당이 패한다고 노 대통령의 법적 임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당의 패배는 여무야대(與無野大)로까지 불리는 집권세력 실종 현상을 고착화시킬 것이며, 노 대통령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말기에 겪었던 ‘식물 대통령’ 현상을 집권 1년 만에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것은 대통령 신임에 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신당이 승리한다면 노 대통령은 가슴에 품고는 있었으나 세(勢)가 불리해서 실행하지 못했던 어떤 프로그램들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으로 볼 때 ‘노무현 제2의 탄생’이나 마찬가지로서 그야말로 재신임을 받는 것이다.
야권도 노 대통령 심판을 선거 이슈로 내걸 것이다. 이미 민주당 내에선 ‘대통령 중간평가’라는 등의 언급이 나오고 있다. 정치 경험이 많은 중진·원로급들이 내각제 개헌 문제를 심심치 않게 거론하는 것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총선 후 내각제 개헌론이 대두될 것”이란 이들의 전망은 노 대통령 신임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신당측에선 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판세가 신당에 유리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나, 이들 역시 현실은 직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노 대통령 진영은 총력전 태세다. 이미 노 대통령이 각 지방을 돌면서 하는 언행은 선거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지난 대선 때처럼 경제·사회·정치·문화의 영역에서 나올 수단은 다 나올 것이고, 그 전면에 TV방송이 설 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서로 방향은 다르겠지만 모두 노 대통령을 직접 공격할 것이 분명해 총선은 유례없는 난타전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거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나라의 앞길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신당이 패해 임기가 4년이나 남은 식물 대통령이 등장하는 것도 국가적으로 보통 일이 아니고, 신당이 승리해 지금의 ‘해프닝 국정’과 ‘국기 문란’ ‘경박하고 위험한 언행’이 정당성을 얻었다면서 더 기승을 부리게 된다면 그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하늘이 도와 절묘하고도 애매한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런 일들은 불과 6개월 후면 우리 눈앞에 닥칠 문제다.
국민이 왜 이런 부담을 져야 하는가. 근본 원인은 대통령직(職)의 위기에 있다. 지난 7개월간 대통령의 권위와 권한·책임이 스스로 무너진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장관 한 사람이 갖은 해프닝을 벌이다 2주일 만에 물러나자 노 대통령은 “내가 좀 우습게 됐다”고 했다. 지금 노 대통령이 우습게 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헌법상 직위와 직책 자체가 우습게 돼버렸다. 공무원들이 사석에서 대통령을 향해 뭐라 하는지 아는가. 국민은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주변에서 돈 추문은 한시도 끊이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젊은 실세들이 돈 추문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그럴 줄 짐작한 사람들에게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것이다.
이제는 노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라는 사람까지 돈을 받은 혐의로 출국금지됐다. 혐의가 확인되면 전형적인 구악(舊惡)이다. 이러고도 총선에 대통령 신임이 걸리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는 길은 막혀 있지 않다. 신당이 승리하더라도 지금까지 국정 현장에서 벌어졌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재연되지도, 증폭되지도 않을 것이란 확신을 국민에게 주면 된다. 그것이 대통령직을 지금 맡고 있고 나중에 물려줘야 할 노 대통령의 최소한의 책무다. 노 대통령이 그 길로 나선다면 국민은 시간을 두고 그것이 선거용 속임수인지 진심인지 파악할 것이다.
(양상훈·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