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가수

“안녕하세요. 지훈님과 한 번도 가까이서 인사를 나눈 적 없지만 님의 공연을 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 중년 여성팬이 남편과 함께 내 공연을 보고 나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얼마 전 나는 정동극장에서 심야 콘서트를 열었다. 밤 10시30분에 시작하는 이색공연이었다. 처음엔 그 시각에 공연이 잘 될까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중년 부부들이 직장일 집안일 다 챙기고 오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입구에선 캔맥주를 하나씩 나누어 드리고 청바지를 입고 온 분들에겐 입장료 20%를 할인해 드리기로 했다.

공연 첫날. 청바지를 입고 극장에 밀려드는 아줌마 아저씨들을 보고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았다. “얘, 너 청바지 잘 어울린다” “어머머, 너도. 몇 년 만에 입어보는 거니?” 하며 깔깔대는 40~50대 부인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벅찼다. 그들은 남편과 함께 20여년 만에 청바지를 입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오랜만에 젊음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우리를 앞만 보고 달리게 한 것은 아닐까? 부부 또는 친구끼리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행복, 자연과 문화에 기대어 웃음을 찾을 수 있는 행복. 그런 여유를 우리는 많이 잊고 지내는 듯하다.

돌아오는 주말엔 부부가 함께 청바지를 입고 영화 한 편 보든가, 동대문시장에 가서 가을옷 하나씩 서로 골라주면 어떨까. 내게 편지를 보낸 팬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제게 ‘여유’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과 남편을 챙겨 보내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마친 뒤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이 전부예요.”

(임지훈·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