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센터럴빌딩 6층에 있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실의 상담대기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30여평 남짓한 공간에 모여 있는 100여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열기로 사무실은 후덥지근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서로의 시선을 피하느라 초점 없이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여·47·경기도 시흥)씨는 건강보조식품 판매업을 하다 진 8000여만원을 갚지 못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지 2개월째. 이씨는 “채권추심대행업체의 빚 독촉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왔다”며 “초라해 보이면 신용 회복 지원 대상에서 빠질 것 같아 일부러 정장을 차려입고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먹고 살고 애들 공부시키려고 장사를 하다 돈이 모자라면 카드로 급전을 썼는데 그 한도가 지난해 갑자기 줄었어요. 그걸 때우기 위해 사채를 끌어썼는데, 지난 9월부터 매출액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니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더라고요.”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45만6614명이었던 개인 신용불량자 수가 지난 8월 현재 341만2524명으로 무려 100만여명이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개인 채무자가 여러 개의 금융기관에 과중한 채무를 지고 있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 상환기간 연장이나 분할 상환 등의 방식으로 채무를 조정해 채무자가 경제적으로 회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다. 지난 8월까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 숫자는 하루 평균 300여명이었지만 경기 불황이 가속화되면서 최근에는 하루 평균 550여명으로 늘었다. 이 중 60% 이상이 생활고 때문에 채무를 진 사람들이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찾은 사람들을 연령대별로 보면 20~30대가 72.9%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8월 한달 여기를 찾은 20대는 전달에 비해 6.6% 감소하고 30대는 1.1% 느는데 그친 반면, 경기불황으로 인해 40대는 7.4%, 50대는 무려 14.9%가 늘어나는 등 중·장년층의 개인채무조정 신청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이동기 과장은 “경기 불황은 일반 직장인들보다 자영업자들이나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치명적이다”라며 “불황으로 열심히 검소하게 살아온 서민들이 경기 불황에 어쩔 수 없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기실 한 모퉁이에서 한 30대 초반 여성은 아들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담을 받기 위한 ‘신용회복지원 사무국 상담일지’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빚 독촉 전화인 듯했다. 사무실 입구 왼쪽에 마련된 18개 상담 창구에는 18명의 ‘신용불량자’들이 “돈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온 한 40대 남자는 “(상담원이) 한 달에 얼마를 갚을 수 있느냐고 묻는데 일용직인 내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 그런 타산을 할 수 있겠느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정 수입이 있었으면 왜 신용불량자가 됐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어떡하든 빚을 갚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 중에는 빚을 갚을 의사도 없이 단순히 빚 독촉만 피해볼 요량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추석 연휴 직전 이곳을 찾은 손모(26·서울 도봉구)씨는 카드빚 5400만원을 연체 중이었다. 당시 구매한 지 한 달도 채 안되는 3200만원 상당의 고급 레저용 승용차인 ‘소렌토’를 팔아 빚을 일부라도 줄이라고 상담원이 권유하자 손씨는 “내가 아무리 신용불량자라고 해도 어떻게 경차를 타느냐. 그러지 말고 변제기간만 조금 늘려주면 안되겠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 상담원은 “빚이 너무 불어나 혼자 힘으로는 갚을 능력이 없게 되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신용 한도 전부를 사용해 흥청망청 써버리는 ‘막가파식’ 신용불량자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위원회를 찾아온 신용불량자 2만4523명 가운데 상환기간 연장 등 채무 조정안이 통과된 사람은 8001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