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혁명에 헌신하기 위한 최선의 길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을 쓰는 것이다.” 199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작가 네이딘 고디머는 선배 작가 마르케스의 이 말을 수상 연설에 인용했다.

고디머는 인권 말살 지대를 날카롭게 고발한 작품들로 노벨상 단골 후보였지만, 90년 남아공 정부가 인종분리정책을 폐기하고 흑인 정치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27년 만에 감옥에서 석방하고서야 수상할 수 있었다.

▶15세기 말,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가 개척되면서 남아공의 인종 차별 역사도 시작된다. 동인도회사가 이곳에 들어가면서 맺은 법령 1호가 ‘인종관계법’이었다. 유색인을 사람 대접 않는 차별 대우는 20세기 말까지 이어진다. 인간이 달착륙에 성공한 20세기 후반에도 백인과 유색인의 성관계가 ‘부도덕행위 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 야만이 곧 현실이었다.

▶1977년 늦가을.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한 소극장 앞에는 젊은이들이 연일 장사진을 쳤다. 실험극장의 신진 연출가 윤호진이 연출한 ‘아일랜드’를 보려는 사람들이었다. 남아공 희곡작가 아돌 후가드가 쓴 이 작품은 두 흑인 죄수의 감옥 대화를 통해 인종차별을 고발한 무대였지만, 관객들은 당시 유신 체제 아래 숨막히던 우리 사회를 읽어냈다.

▶상처가 깊으면 그만큼 영롱한 진주를 맺는 것일까. 남아공의 처절한 역사는 지금 뛰어난 문학 작품을 낳고 있다. 엊그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존 맥스웰 쿠체도 남아공 작가다. 19세기 제정 러시아(소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에서 현대의 한 변경 마을(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시공을 자유자재 넘나들며 그는 묻는다. “왜 진실이 내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데 내 자신에 대한 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갈 진실을, 목숨 걸고 찾아나서는 것이 영웅이다. 영웅은 그런 점에서 자신의 모순과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경계인이기도 하다. 쿠체와 고디머, 그리고 후가드는 모두 흑과 백의 갈등, 영국계와 네덜란드계 사이의 백과 백 갈등 속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으로 살아온 백인 작가들이다. 지난 100년간 나라를 잃고 동족 상잔의 6·25를 겪은 데 이어 분단 50여년을 살아온 한국인의 상처도 만만치 않다. 그 상처가 진주를 맺을 날이 언제쯤일까.

(박선이논설위원 sunnyp@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