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在獨) 학자 송두율(宋斗律)씨는 1973년 9월 이후 30년간에 걸쳐 모두 18차례 북한에 드나들며 북측의 자금 지원을 받고 ‘독일 유학생 포섭 및 지식인 조직 결성’ 등의 활동을 해 왔다고 국정원 조사결과를 보고 받은 국회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1일 밝혔다.
◆ 포섭 및 정치국 후보위원 선정
송씨는 73년 9월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북한 공작책 이재원(당시 41세)씨에게 포섭돼 모스크바를 경유, 북한에 들어가 2주간 북한의 초대소에 머무르면서 주체사상 학습 및 공작원 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입당했다. 이재원씨는 서울대 출신으로 네덜란드에 체류하던 76년쯤 북한에 들어가 남한 내 지하당으로 위장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 평양대표부 대표로 활동한 인물이다.
◆ 유학생 조직 구성 및 활동자금 수수
송씨는 73년 첫 입북 때 북한의 한 부부장으로부터 ‘독일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조직을 결성하라’는 지시와 함께 활동비로 미화 2000달러를 받았고, 겉으로는 북과의 연계사실을 은폐한 채 74년 3월 독일 유학생들을 규합, ‘민주사회 건설협의회’를 만들었다.
80년대 말에는 국내 간행물등을 통해 ‘내재적 접근론’을 제시, 친북 이론을 전파했다. 송씨는 또 79년 10월 입북 때는 ‘민주사회 건설협의회 활동상황’을 보고한 후 미화 1000달러, 88년 9월 입북 때는 전금철 조평통 부위원장으로부터 “조국통일 위해 힘써주고 유능하고 똑똑한 유학생 있으면 연결시켜 달라”는 지시를 받고 1000달러를 받았다.
◆ 김일성 면담 후 후보위원 선정통보
송씨는 91년 5월 24일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방북, 묘향산 별장에서 김일성과 면담 후 자신에 대한 주변예우가 이전보다 훨씬 달라진 것으로 확인했다. 이후 송씨는 주독 북한이익대표부에 파견된 통일전선부 공작원 송룡욱으로부터 매년 연구비조로 2만~3만달러를 받았다. 96년 8월 송씨 부친이 사망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친필(親筆) 지시로 재독 북한 이익대표부에 조의금으로 1500마르크를 전달하도록 했다.
송씨는 91년 5월쯤 자신이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당시 북한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후 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이익대표부 송룡욱으로부터 ‘송선생이 김철수란 이름으로 장례위원으로 선정됐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통보를 받고 입북했다.
94년 7월 당시 북한국가 장의위원회 명단에 김철수는 서열 23위로 등재 돼 있다. 송씨는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 노동신문에 게재된 장례위원 명단에 자신이 김철수란 가명으로 등재된 것을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은 당시 송씨가 장례식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목을 붙잡고 우는 사진을 확보,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송씨는 또 한겨레신문사가 95년 8월 발간한 자신의 저서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132쪽에 게재된 ‘북한 노동당 권력구조의 연속성과 변화’ 표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중앙위원회 정위원인 ‘김철수’는 자기 자신이라고 진술했다.
◆ 북한 기념일마다 자필 충성맹세문
송씨는 92년 5월 우리측에 귀순한 재독 유학생 오길남씨를 86년 11월 만났을 당시 “내가 오형이라면 북한에 다시 들어가겠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북한밖에 없다”며 입북을 권유한 바 있다고 정 의원은 밝혔다. 송씨는 96년경 이후 북한정권 수립일(9월 9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 등 주요 행사 때마다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내용의 충성맹세문을 친필로 작성해 북한에 10여 차례 전달한 사실도 밝혀졌다.
97년 황장엽 노동당 전비서가 귀순하자 송씨는 다른 독일 주재 북한 공작원에게 자신의 정체를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한 사실도 밝혀졌다고 정 의원은 전했다.
송씨가 가장 최근 입북한 것은 지난 3월 8일로 밝혀졌다.
◆ 저서·강연 등도 문제
송씨는 88년 서울올림픽 때 ‘평화로운 게임이 될 수 없는 행사’ ‘한국은 올림픽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해 서울에서의 올림픽 행사를 비판했다.
송씨는 김일성이 사망한 뒤인 95년부터 북한 상층부의 통일전선 구축의 일환으로 중국 베이징(北京)과 평양에서 모두 6차례에 걸쳐 남·북한 및 해외학자 통일회의를 개최했으며, 회의 일정과 참석자의 범위는 북한과 상의해서 조정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송씨는 북한 사회과학원이 주관한 강연을 했으며, 강연 내용은 ‘반미(反美)’가 주종이었다고 정 의원은 밝혔다.
◆ 정식교수 아니다
정 의원은 “송씨는 엄밀한 의미로 대학교수가 아니다. 송씨는 교수로서 한 번도 재직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송씨는 금년에도 뮌스터 대학에서 일종의 특강형태로 5차례 강의한 데 불과하며, 송씨가 대학에서 560㎞ 떨어진 베를린에 거주하며 시간당 강사료로 교통비를 겨우 댈 정도였다고 정 의원은 밝혔다.
정보위원들이 “송씨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고 부인이 사서로 생계를 꾸렸다고 했는데 사실상 송씨 직업이 북한공작원이고 공작금으로 생계를 꾸린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국정원측은 대체로 공감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뮌스터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신봉기 교수는 “송두율씨는 정교수(Professor)가 아닌 ‘사강사(Privatdozent)’”라며 “독일의 사강사는 정식교수가 되기 이전의 직위로 우리나라의 시간강사와 같이 취약한 신분은 아니지만 대학에 대해 의무와 권한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 자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