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암에 걸렸을 때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암 치료 기술의 개발로 암 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국립암센터 조사에 따르면, 암 환자들의 60~80%가 통증을 호소하고, 약 20%의 환자들은 우울증 등 정서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약 40%의 환자가 원래의 직업으로 복귀하지 못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만큼 암으로 인한 환자들의 삶의 질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암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즉 암 치료가 잘 끝난 환자라 하더라도, 50%의 환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피로감에 시달리며, 대인관계·성생활 등 사회 생활 전반에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유방암 환자는 유방 상실로 정서적 고통을 겪고, 부부 관계마저 어려움을 겪는다. 대장암 수술로 인공항문을 갖게 된 환자들도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암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아쉬운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건강증진법은 금연 및 절주, 영양개선, 구강건강사업 등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 국한되어 있다.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건강 및 재활은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환자는 단지 질병 치료의 대상자로만 인식되고 있으며, 환자들의 인간적인 삶의 질은 우선 순위에서 한참 뒤로 처져 있다.
앞으로 암 치료기술이 더욱 향상됨에 따라 암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합병증 사전 예방대책, 피로 등 후유증에 대한 재활지원사업,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사회적응 프로그램, 직업 복귀를 위한 작업치료 등 다양한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 대한민국헌법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지 않았는가.
‘건강한 사람을 더 건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은 환자를 보다 건강하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현재 건강한 국민에 국한된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건강 증진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윤영호·39·국립암센터 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