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풀 몬티'에 출연하는 박일규 교수. 몇 년간 깊은 슬럼프에 빠져있었다는 그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풀 몬티'의 메시지를 내 얘기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올해 만 오십을 넘긴 박일규 (朴一圭·서울예대 무용과) 교수는 오는 12월 국내에서 뮤지컬로 올려지는 ‘풀 몬티’에 출연한다. 실직자들의 재기를 다룬 ‘풀 몬티’에서는 남자 배우들이 엉덩이를 드러내고 스트립쇼를 하는 장면이 있으니 교수인 그로선 파격적인 결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이라는 땅에서 대학 교수가 제자도 끼어 있을 관객 앞에서 벗는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하고 운을 떼봤다. “캐스팅이 결정된 날 아내가 걱정스런 얼굴로 ‘제자들이 볼 텐데 자신있느냐’고 묻더군요.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신경 안 씁니다.”

그는 출연을 결심한 날부터 몸 만들기에 들어갔고, 담배도 딱 끊었을 정도로 작품에 적극적이다.

박 교수에게 ‘옷 말고 자신에게서 뭔가 거둬내고 싶었던 게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받았다. “저로선 터닝 포인트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지난 3년간은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어요. 부상이 이어졌죠. 연습 도중 발가락이 부서지고, 끝내는 아킬레스건까지 끊어져 버렸죠. 제 몸만은 언제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춤으로 활동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때 주위로부터 들은 소리는 “당신도 이제 끝났어. 연습과 무대 출연도 줄이고 나이에 맞게 편하게 살라”는 거였단다.

“그러나 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풀 몬티’의 메시지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린다는 겁니다. 제 자신이 ‘풀 몬티’라고 생각하고 부상이 몰고왔던 막연한 불안감과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간 박 교수가 겪어왔던 삶 자체가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기에 이번에 보여주는 자신감도 가능해 보였다.

시련은 그의 태생에서부터 예고된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의장까지 지낸 허헌(許憲) 전 김일성대학 총장이었고, 박 교수의 어머니 허근욱(작가)씨는 6·25 당시 남편을 따라 월남했다. 박 교수는 중학교 때까지 친구들로부터 ‘빨갱이 집안’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따돌림도 숱하게 받았다.

“놀리는 친구를 때리고 학교를 나가지 않은 적이 많았죠.” 그는 고교 시절 자신의 삶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학생회장에 과감하게 도전해 당선됐다. 학생회장을 계기로 콤플렉스에서 벗어났고 성격도 바뀌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를 피해 그가 택한 길은 예술, 그중에서도 연극(중앙대 연극영화과)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다시 흔들어놓았다.

스물네 살, 군대를 제대하고 국립극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우연히 보고 발레의 몽환적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는 곧바로 집에 발레 바를 설치하고 개인교습을 받은 끝에 국립발레단에 들어갔다.

그러나 발레 시작이 너무 늦었고, 한계를 느낀 그는 현대 무용의 산실로 꼽히는 뉴욕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동급생들과 무용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 않더군요. 동양인을 무시하는 풍토였으니까요.”

독특한 동선(動線) 등 그의 작품이 독창성을 발휘하자 나중에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하겠다고 줄을 설 정도가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침대에서 두 다리를 뻗고 제대로 잔 적이 없을 정도로 피나게 노력했다.

그는 "남자 현대무용 1호"라는 타이틀로 귀국, 서울예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아메리칸댄스페스티벌(ADF)’에 초청되는 등 안무가로서 인정받은 박 교수는 “그동안 무용뿐 아니라 연극과 방송 등 여러 장르를 경험해봤는데 이제부터는 이를 아우르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작업이란 뮤지컬. 박 교수는 올해 동랑댄스시어터연구소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뮤지컬을 위한 콘텐츠 개발에 나섰다. ‘나이를 잊은 교수님’은 지난해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해 주변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술 마시는 것 줄이고, 잠자는 것 줄이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엉덩이 보겠네요’라며 뮤지컬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공연 연습도 게을리할 수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