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에 살면서 BMW를 타는 인생. 언젠가는 대박의 주인공이 될 것을 믿으며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꿈이라고 한다. 태풍이 민초의 삶을 할퀴며 지나간 무렵 로또의 판매율이 급상승했는데 이유가 눈물겨웠다. 한두푼 성금 내느니 크게 벌어 크게 돕겠다는 것이었는데, 며칠 전 드디어 일등 당첨자가 수억의 성금을 쾌척했다 한다. 기사를 읽으며 나는 독백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구나.
집 근처에 구멍가게라고 밖엔 부를 수 없는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다. 현상유지나 할까 늘 걱정스러웠는데 낡은 뼈대에 어울리지 않는 휘황한 전광판을 설치한 후 가게는 날로 번창하다 못해 파라솔 갖춘 테이블을 두 개나 늘어놓게 되었다. 전광판의 이월당첨금 숫자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질 때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기온은 떨어져 서늘한데 차가운 철제의자에 앉아 백열등 불빛 아래 숫자를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싸해 졌다. 나는 어디에서도 그토록 무아지경에 빠진 표정을 본 적이 없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펜을 쥐고 있는 손을 본 적이 없다.
힘들고 팍팍한 하루의 끝에 ‘타워팰리스와 BMW’라는 일주일 치 꿈을 사는 일이, 이 땅에서 절룩이면서라도 살아가려 애쓰는 이웃들의 눈물겨운 목발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일확천금이니 사행심이니 할 게 있겠나 싶었다. 웅크린 어깨가 애잔해 보이고 꿈속에서마저 도덕교과서나 읽고 있으라고 말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든 건, 가을은 깊어 가는데 어째 풍성함보다는 쓸쓸하고 스산한 기운만 가득한 시절 탓인가 보다.
(정미경·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