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초 찾아 제주도까지 왔다는 진시황의 사자 서복(徐福)을 기념하는 전시관이 어제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서 개관했다. 폭포 근처 벼랑에 ‘서시가 이곳을 지나갔다(徐市過此)’라 새겨진 옛글을 바탕으로 유적을 정비하고 관광재로 창출한 것이다.
서시(徐市)는 서복의 이명(異名)이다. 서복이 불로장생약 찾아 떠난 것은, 이 기록의 출처인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 태어난 지 겨우 70년 전에 있었던 일인지라 전설이나 가공의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기록처럼 진시황의 특명으로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과 오곡(五穀)의 씨앗, 온갖 기술자들인 백공(百工)을 거느리고 불로초 찾아 떠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상황이나 인적구성으로 미루어 진시황의 학정을 피해 불로초 탐색을 명분으로 한 집단 망명 이민이요, 서복은 그 보트피플의 리더였다는 편이 옳다고 본다.
이 집단 이민선이 중국 동해안과 한국 남해안을 거쳐 일본으로 갔었던지 그 해안에 서복이 지나갔다는 유적과 전설이 곳곳에서 발굴되어 관광재로서 각광받고 있다. 서복이 출항했다는 중국 진황도시(秦皇島市)의 해변에서 십수년 전에 묵은 비석 하나가 발굴되었는데 ‘진황구선 입해처(秦皇求仙 入海處)’로 해독되어 서복이 배를 띄운 곳이라 하여 진황도시에서 관광명소로 개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중국 저장성 츠시(慈溪)에서도 봉래산에 이른다는 달봉(達鳳), 진나라부터 건너간다는 진도(秦渡) 등의 지명을 들어 서복이 머물고 갔다 하여 서복호텔이 서고 동도주(東渡酒)라는 토주를 팔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남해 금산의 부소산에 오르다 보면 가로 7m 세로 4m의 바위 벼랑에 해독이 어려운 고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서복과 관련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일본 구마노우라(熊野浦)에는 서복이 와서 살다 죽었다 하여 무덤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그 무덤에 서복이 구해놓고 못 가져간 천대도라는 약초가 자생하여 불로초로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
중국의 자오쯔양(趙紫陽)이 총리 시절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진시황에게 못 전해드린 이 불로초를 2000년 후에야 전해드린다고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선물했었다. 이 서복 전설의 고향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관광재로 선을 보인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