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동 집앞 공원은 백혜선(사진 오른쪽)·최은식 부부가 원재(맨 왼쪽)·연재를 데리고 드나드는 단골 휴식처. 이들 부부 음악가의 꿈은 한국의 작은 시골에서 후배들을 위한 음악 페스티벌을 여는 것이다.

세상에 100% 평등한 부부가 있을까? 여기 소개할 서울대 백혜선(38·피아노)·최은식(36·비올라) 교수 부부는 적어도 겉보기엔 그렇다. 둘 다 음악의 길을 걷는 연주자이자, 같은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 집안에서도 가장이 따로 없고, 가사를 비롯한 두 아이의 육아 역시 ‘그 순간 덜 바쁜 사람’이 챙긴다.

오히려 ‘평등하다’고 표현할 때 억울한 사람은 남편 쪽이다. 피아노 솔로 연주자인 데다 국내외 연주 스케줄이 빽빽한 아내에 비하면 덜 바쁘고 여유로운 탓. “앉은 채 양손으로 피아노를 쳐야 하는데다 한번 연습에 들어가면 무서울 정도로 음악에 몰두하는 집사람에게 아기를 업고 음식을 만들라고 할 순 없잖아요. 차라리 제가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비올라를 연습하는 게 쉽지요. 사랑과 배려를 전제로 한 부부 사이의 평등이 저울의 수평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계 선후배이자 연상·연하의 커플로 결혼 당시 화제를 불러모았던 이들 부부는 성격이나 자라온 배경이 딴판이다. 자기 주장 강하고 시원시원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백씨는 솔로악기 피아노를 꼭 닮았다. 반면 최씨는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실내악의 화합을 일궈내는 비올라를 닮아 사려깊고 내성적이다.

유년시절의 추억 또한 전혀 다른 그림이다. “망나니짓 많이 해서 엄마한테 엄청 맞았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남자에겐 지지 않겠다는 오기와 승부근성은 가부장적인데다 환자들에겐 욕쟁이 의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죠.”(백혜선)

그에 비하면 경북 경주에서 자동차로 40분을 들어가야 하는 촌동네 출신 최 교수는 흙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순둥이다. “겁이 많아서 무대에 오르는 게 제일 싫었어요. 징징대면 어머니가 그러셨죠. 떨릴 게 뭐 있노? 앞에 있는 사람이 다 돼지라고 생각해라 고마.(웃음)”

엄마와 함께 피아노를! 맏이 원재가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이다.

각각 ‘화성’과 ‘금성’에서 날아왔지만 두 사람이 결혼해 일궈가는 삶의 모습은 지난해 그들이 함께 하모니를 이뤘던 ‘부부 음악회’ 이상으로 아름답다. 원재(3), 연재(2)의 출생은 행복이란 서로에 대한 배려와 희생으로 얻어진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했다. “나와 음악 이외에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아니에요. 연습실을 집안에 들인 것도 아이들이 울면 언제든 달려가 안아주기 위해서죠. 아이들과 함께 제 음악도 성숙해가는 느낌입니다.”(백혜선)

남다른 육아법이 있는 건 아니다. 책보다는 자연, 여행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배워나갔으면 좋겠다는 게 최 교수의 바람. 연주차 외국을 많이 오가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것과 부모 중 한 사람은 아이들 곁에 있어주자는 것도 두 사람의 약속이다. “저를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드렸던 어머니처럼,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환자들을 돌봤던 아버지처럼, 그리고 사랑과 유머로 자식들 마음에 그늘이 안지게끔 무던히 노력하시는 저희 시어머니처럼 우리들 열심히 사는 모습 자체가 아이들에게 좋아보이게끔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백혜선씨는 남편에게 프러포즈 받던 날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누나, 우리 데이트 열 번만 해보면 안 될까?” 하고 묻던 후배. “이젠 어린 것들까지 나를 놀린다”며 엉엉 울자 엄마가 반색을 하고 나섰다. “은식이가 어때서? 사람을 봐야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결국 생전 처음 남자에게 데이트란 걸 신청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진리를 남편을 통해 배워요. 터프하고 고집세다고 소문난 제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굽히는 남자가 바로 남편이지요. 특히 음악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반려자예요. 귀와 직감이 뛰어난 남편은 정확하고 분석적인 음악, 때로 냉정하기까지 한 제 연주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어줍니다. 물론 우는 아기 달래는 데도 저보다 한수 위지요.(웃음)”